[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26>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1월 3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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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때 관영은 임시 재상 전광을 잡아 죽이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박양에서 며칠 쉬었다가 기세를 몰아 전횡이 있는 영하로 밀고들 작정이었다. 그런데 영하로 달아나 숨어있다고 얕보고 있던 전횡 쪽에서 오히려 기습을 해 왔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겁내지 마라.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궁한 쥐가 고양이를 물려고 덤비는 격이다!”

관영이 칼을 빼들고 군사들을 독려했으나 한번 꺾인 사기는 쉽게 되살아나지 않았다. 끝내 진채를 지켜내지 못하고 20리나 쫓겨가서야 겨우 패군(敗軍)을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승세를 타고 있는 한군인 데다 군세(軍勢)도 전횡이 이끈 제나라 군사들보다는 월등히 컸다. 거기다가 지난번 관영과의 싸움에 지면서 기마대가 꺾여 전횡에게는 제대로 된 기마대가 없었다. 그 때문에 한군은 싸움에 져도 한바탕 고단하게 쫓기는 것으로 그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진채를 든든하게 세우라. 녹각과 목책을 빽빽이 두르고 누벽(壘壁)을 높이 해 적의 야습에 대비하라.”

한번 데어 본 아이가 불을 무서워하듯 관영이 장졸들을 다그쳐 전에 없이 든든한 진채를 펼치고 전횡의 추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하룻밤이 지나도 전횡은 관영을 뒤쫓아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관영이 탐마를 풀어 알아보게 했다. 오래잖아 탐마가 돌아와 알렸다.

“전횡은 어젯밤 영하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대군인 양 위장하고 남아서 뒤를 끊던 제나라의 의병(疑兵)도 오늘 아침에는 영하로 돌아갔습니다.”

“전횡이 이기고도 그토록 급하게 돌아간 까닭이 무엇이라더냐?”

“빼앗은 우리 진채를 돌아보고 우리 군세를 짐작한 까닭인 듯합니다. 어제 전횡이 이끈 군사는 1만 명을 크게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절반도 안 되는 병력으로 기마대도 없이 한군을 기습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석연찮은 데가 있는지 관영이 다시 물었다.

“그래도 승세란 게 있지 않느냐? 어렵게 이겨놓고 아무 얻은 것 없이 물러나다니?”

“막상 이겨놓고 보니 더욱 비세(非勢)를 절감한 것은 아닐는지요? 거기다가 제나라 왕이 되어 처음 치른 싸움에서 체면치레는 했으니 물러나 지키기로 한 듯합니다.”

그 말이 처음 들어보는 것이라 관영이 얼른 다시 물었다.

“전횡이 제왕(齊王)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제왕 전광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전횡은 스스로 제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탐마로 나간 군사가 알아온 것은 대체로 옳았다. 관영도 거기까지 듣고 보니 전횡이 왜 그렇게 순순히 물러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관영이 급해졌다. 곧 장수들을 자신의 군막으로 불러 모으게 한 뒤 재촉하듯 말했다.

“보기(步騎) 2만을 골라 되도록 빨리 행군을 채비하게 하라. 나머지 노약한 병사와 시양졸(시養卒)은 치중(輜重)과 더불어 뒤따라오게 하고, 가볍고 날랜 보기만으로 밤낮없이 달려 영하로 간다. 전횡이 제왕으로서 그 땅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싹을 짓뭉개버려야 한다.”

그러고는 그날로 가볍게 차린 보기 2만만 데리고 영하로 달려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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