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24>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1월 28일 04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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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제북(齊北)에 가 있던 조참의 군사도 밤낮 없이 고밀(高密)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이면 한신과 합류할 것이라 합니다. 꾀 많은 한신이 관영과 조참과 더불어 세 방향에서 용저를 흔들어 대면 형세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말을 듣자 싸움이라면 한가락 하는 전횡도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임치로 가는 길을 바꾸어 고밀로 군사를 몰고 갔다. 도중에 하룻밤을 쉰 전횡의 군사들이 다시 반나절을 걸어 고밀을 50리쯤 앞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한 대의 패군이 허둥지둥 달려오다가 제나라 기호(旗號)를 보고 털썩털썩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어디서 싸우다가 이리로 왔느냐?”

전횡이 그 군사들에게 물었다.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반은 얼이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고밀에서 대왕과 싸우던 군사들입니다. 고밀성이 떨어져서…이렇게….”

그리고는 용저가 한신의 수공(水攻)에 걸려 죽은 일이며 제왕 전광(田廣)이 고밀성을 잃고 달아나게 된 경과를 횡설수설 일러 주었다. 듣고 난 전횡이 다시 물었다.

“그럼 대왕께서는 어디로 가셨느냐?”

“모르겠습니다. 고밀성으로 들 겨를이 없어 한 갈래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서북쪽으로 가신 것밖에는….”

그렇게 되자 전횡은 군사를 영하(영下)로 물리는 한편 사람을 풀어 조카인 제왕 전광이 간 곳을 알아보게 했다. 며칠 안 돼 전광이 성양성으로 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에는 제왕 전광으로부터 외응(外應)을 요청하는 사자가 달려왔다.

이에 전횡은 군사를 서쪽으로 돌려 성양으로 달려갔다. 한신의 대군에게 에워싸인 성밖에서 유격(遊擊)으로 그 압박을 덜어 주며 변화를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서쪽으로 길을 잡은 지 이틀 만이었다. 박양 쪽에서 땀에 젖은 기마 한 필이 달려와 전횡을 찾았다.

“너는 누가 보냈느냐? 어찌하여 나를 찾느냐?”

전횡이 그 기졸(騎卒)을 불러 그렇게 묻자 기졸이 울며 대답했다.

“저는 임시로 재상이 되어 임치를 지키던 전광(田光) 장군의 수하입니다. 성양의 참혹한 소식을 전하라는 명을 받고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참혹한 소식이라니? 성양은 어찌 되었으며 대왕은 어디 계신가?”

“어제 낮 성양이 한군에 떨어지고, 대왕께서는 스스로 목을 찔러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 전횡은 눈앞이 아뜩했다. 제왕 전광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우러르던 형 전영(田榮)의 아들이요, 자신이 왕으로 세우고도 아끼며 보필하던 조카였다. 반드시 제나라와 함께 지켜 패왕 항우에게 무참히 죽은 형의 한을 풀고, 가문을 한 나라의 종실(宗室)로 번창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전광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고 말았으니 눈앞이 아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광(光)은 지금 어디 있는가?”

“지금 박양 가까이 있는데, 상국께로 오고 있습니다. 오늘밤이면 이를 것입니다. 제게 먼저 상국을 뵙고 말씀드리라기에….”

하지만 임시재상 전광도 끝내 오지 못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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