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55년 철학자 키르케고르 사망

입력 2005-11-11 03:08수정 2009-10-0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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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알랭 드 보통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라는 역설적인 행복론을 펼친다. 행복이 본래 없다고 주장하는 그는 일종의 염세주의자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 때문에 낙심한 젊은이가 사랑의 본래 계획에 행복이 절대 없었다는 것을 듣는다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 가장 염세적인 사상가들이야말로 가장 쾌활할 수 있는 것이다.’

좌절, 불안, 절망, 슬픔 같은 부정적 감정 역시 욕망의 한 형태이며 따라서 생의 에너지라고 한 원조(元祖)는 따로 있으니 바로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1813∼1855)다.

그는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뒤 더 유명해졌다. 20세기 전반에 유럽인들이 두 차례의 가공할 전쟁을 겪으면서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정의’니 ‘진보’니 하는 장밋빛 이념이 아니라 개개인의 주관적 의지와 자유, 즉 실존임을 깨달은 덕분이었다.

키르케고르는 30대 초반에 쓴 논문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인간의 삶을 세 단계로 나눴다. 1단계에서는 쾌락만을 좇는데 이것만으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권태’ 때문이다. 따라서 남을 생각하며 가치와 윤리에 따르는 두 번째 ‘윤리적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역시 삶의 유한성 때문에 근본적인 ‘생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삶의 완전한 단계인 세 번째는 ‘종교적 단계’이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적 결심’에 따라 진정 신을 믿고 따를 때 삶에 대한 무력감과 허망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키르케고르가 사상사에 미친 공로는 신을 절대화하여 무조건 따를 것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관계와 인간 내면의 본질에 천착해, 신을 보는 관점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렸다는 점이다.

키르케고르는 삶의 완성을 위해 불안과 절망은 필수 요소라고 말했다.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의 삶으로 옮겨가는 것은 외부의 힘이 아닌 순전히 ‘자기 자신의 결단’에 따른 것이어서 매 순간 반성하고 노력하는 인간이라면 ‘불안과 절망’을 자양분으로 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습과 제도로 굳어버린 당시 교회에 비판적이었던 그는 결국 교회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그 싸움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한 요인이 됐다. 1855년 10월 어느 날, 거리에서 졸도한 뒤 한 달 만인 11월 11일 병원에서 42년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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