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박철]산을 닮고 싶다

  • 입력 2005년 9월 12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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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處暑)가 되면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무덥던 더위가 물러가고 말았다.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온다. 하늘은 파랗게 높아만 가고 먼 산도 확 트여 이마 앞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리움을 마음에 품고 산을 오른다. 부산은 어디서나 산에 오를 수 있어 좋다. 내가 단골로 올라가는 산은 우리 동네에 있는 구봉산이다. 야트막한 산이다. 산속 나무숲에 들어가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 숲 속에 나를 맡기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세속의 모든 욕망이 사라진다. 숲 속에 들어가 있으면 가장 솔직한 기도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을 통하여 내면의 실체를 거울 들여다보듯이 볼 수 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각자들이 산으로 들어갔나 보다. 숲에 들어가 자연을 통해 숲의 음성을 들으려면 침묵하는 게 좋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욕망의 모든 찌꺼기가 내 속에서 떨어져 나가면 자연의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들꽃들의 인사 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산에 오르는 행위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산은 절대로 사람을 속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산에 대한 감상은 나에게 있어선 하나의 신앙이다. 산은 인간이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산은 인간의 그 어떤 오만함도 위선도 받아주지 않는다. 산은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포용해 주며 우리를 언제나 넉넉한 품으로 인도해 준다. 산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따스하며 향기롭다. 모진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언제나 산은 그대로 있다.

산은 속일 수 없다. 산의 인내와 침묵을 사람들은 배워야 한다. 산은 언제나 말이 없다. 산은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산 앞에선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산은 자기 발로 올라가야 한다. 산은 올라갔으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산에 올라 정상에 서면 모든 것이 작게 보인다. 욕심이 사라진다. 사람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감격하게 된다.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게 된다.

내가 정작 꿈꾸는 것은 산 같은 사람이다.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없는, 정말 산 같은 사람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사람, 이름 하여 ‘산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 나는 성숙한 사람은 산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넉넉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 매사에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릴 줄 아는 사람, 시세에 따라 행동하지 아니하고 꿋꿋하게 자기의 할 바를 다하는 사람, 삶의 향기가 있어 언제나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산사람, 산사나이다.

사는 동안 정말 그런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을 꿈꾸며 산다. 눈을 감으면 산이 어른거린다.

가을로 들어가는 초입, 내 마음에 있는 산은 나에게 ‘더욱 겸손하게’ 살 것을 가르친다. 내가 산을 오르면서 깨닫게 되는 가장 큰 삶의 화두다.

박철 부산좋은나무교회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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