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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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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후 ‘라인 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경제대국 건설에 성공한 독일은 199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강의 산업 경쟁력을 과시했다. 그 결과 독일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세계 최고위권 소득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독일 통일 이후 급증한 사회적 비용, 1970년대 초반 이후 30여 년간 확산되어 온 좌파적 가치의 덫은 그토록 건실하다고 믿었던 독일 경제의 뿌리를 흔들어 놓았다.
분배 복지 위주의 경제정책은 독일 경제의 체력을 급속히 약화시켰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독일은 1% 내외의 저성장 수렁에 빠져 있다. 유럽 최하위의 성장률이다. 설비투자 부진이 심화됐으며, 기업과 자본의 국외 탈출이 이어지고 실업률은 급등했다. 기업 경영에 대한 노조의 지나친 영향력 행사와 과다한 사회보장비용 지출 등은 독일 경제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1950년대 이래 시행되고 있는 해고예고제는 기업에 엄청난 해고 비용을 강요해 왔다. 기업 경영자들이 공장에 신규 설비를 설치할 때도 반드시 노조와 협상을 해야 할 정도로 경영은 노조의 제약을 받고 있다. 그동안 누적된 부작용이 최근 극에 다다랐다. 올해 들어 독일의 실업자는 521만 명으로 전체 노동인구의 21.6%에 달한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 기업 10개 중 9개가 해외 이전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 지출 급증에 따라 정부의 재정적자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커졌다. 100여 년에 걸쳐 구축한 복지국가 모델은 더는 지탱하기 어렵다. 집권 사회민주당의 ‘노이에 미테(신중도)’ 실험은 마침내 실패로 판명 났다. 사민당 당수 프란츠 뮌테페링은 반(反)자본주의, 반세계화 정서에 호소한다. 독일 경제 위기의 원인을 탐욕스러운 외국 자본과 이윤 챙기기에 급급한 기업과 자본가의 부도덕성 탓이란 거다. 좌파의 ‘남의 탓’ 전략은 동서양 구분이 없나 보다.
이제 대다수 독일 국민은 집권 좌파 정당의 분배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책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민의 공감대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최근 슈피겔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복지 개혁 등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내세운 기독교민주연합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사회가 ‘U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U턴 현상은 교육 분야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독일은 2001년 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에서 읽기, 수학, 과학, 문제 해결 능력 부문에서 모두 중하위권을 기록해 국민과 교육 당국을 아연케 했다. 이에 자극받은 독일은 학생들의 학력 신장 프로그램, 경쟁체제 강화 및 전국적인 학력평가 실시 등 교육 시스템을 재정비했다. 지난 3년간의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2005년 PISA-E 테스트에 따르면 바이에른 주를 비롯한 몇몇 주의 학업성취도가 핀란드와 한국에 필적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슈나이더 바이에른 주 교육장관은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 ‘평등’이 아니라 ‘경쟁’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아울러 주목할 것은 이번 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한 바이에른 주의 경우 학생들의 성적과 출신 계층 간의 상관관계가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경쟁의 가치를 인정하는 우파 교육정책이 평등을 강조하는 좌파 교육정책을 ‘정의’라는 관점에서도 앞섰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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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좌파의 실패는 “평등 분배 복지 지향은 결과적으로 불평등 비효율 빈곤을 부를 뿐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그동안 경제개혁, 교육개혁 논의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독일을 보라”고 외쳐 왔던 우리나라 좌파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그들의 이상향(?)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그토록 ‘더러운 단어’로 치부했던 ‘경쟁’이 정답 아닌가. “그래 독일을 보라.”
조전혁 객원논설위원·인천대 교수·경제학 jhcho@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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