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야당 市道지사와 여당 장관

  • 입력 2005년 6월 1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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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서울시장이 어느 모임에서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는 1등을 했고, 노무현 후보는 3등이었다. 그런데 3등은 지금 대통령이고, 1등은 서울시장이다.” 1996년 15대 총선(서울 종로)에서 맞붙었을 때의 얘기다.

이 시장은 그 총선 때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고 국민회의 이종찬 후보가 2등, 그 다음이 노 후보였다. 이 시장은 이따금 이 얘기를 한다는데, 대권(大權) 도전 의지의 표명일까. 청계천 주변 재개발 비리 의혹 수사가 이 시장을 비켜 가긴 했지만 발밑에서 벌어진 수사에 마음고생이 심했을 그는 요즘 지방대를 돌며 특강을 하고 있고, 가을에는 평양도 방문할 예정이다.

몇몇 시도지사의 움직임에 정치적 야망이 묻어 난다.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놓고 정부 여당과 몇 차례 부닥쳐 일단은 ‘선전(善戰)’한 듯한 손학규 경기지사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주말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키 큰 사람을 잘라서 작은 사람에게 붙여 주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심대평 충남지사도 자민련을 탈당하면서 정치적 보폭(步幅)을 넓히고 있다. ‘길은 항상 새롭게 열린다’라는 제목의 저서를 통해서도 메시지를 던진다. 신당을 창당해 직접 나서든, 아니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든 다음 대선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들 시도지사 주변에서는 지방행정을 종합적으로 다뤄 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흘린다. 정치판 경력밖에 없는 사람보다 행정 경험이 풍부한 ‘실용 정치인’의 국정(國政) 경쟁력이 높을 것이라는 얘기다. 주지사를 거쳐 백악관의 주인이 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들이 닮고 싶고, 이루고 싶은 모델일 것이다.

여당 사람들은 야당 소속 시도지사들의 이런 움직임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현재의 시도지사 중에는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이 없다”고 깎아내렸다. 여당 당직자들은 “시도지사 자리가 대권의 징검다리냐”고 비아냥거린다.

‘지방 살림’이라는 본업(本業)은 게을리 한 채 잿밥에만 신경 쓴다면 더 심한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 사람들이 지금 이들 시도지사를 폄훼하기에는 ‘제 코가 석 자’ 아닐까. 더구나 누구는 대통령감이 아니라며 품평(品評)하듯 접근하는 것은 오만한 태도다. 대통령을 뽑는 것은 국민이지, 정부 여당 사람들이 아니다. 특히 중립적이어야 할 국무총리가 ‘나는 고수(高手), 너는 하수(下手)’ 같은 말을 하면서 야당 인사를 흠집 내는 데 앞장서는 것은 경솔한 당파적 행동이다.

그런 식이라면 여권의 대권 후보군(群)인들 화살 맞을 일이 없겠는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만 보더라도 본업과 잿밥 사이를 들락거리고 있는 모습 아닌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대권 주자들은 이미 시험대에 올라 있다. 여권이건, 야권이건 큰 꿈을 꾸는 사람들은 너무 일찍 김칫국부터 마시며 ‘퍼포먼스 정치’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에서 성적을 올려 실력을 입증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말과 연기(演技)만으로는 국민을 더는 현혹시키기 어렵지 않겠는가.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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