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야구계에 누 끼쳐 죄송합니다”

  • 입력 2005년 3월 8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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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으로 끝난 정대철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의 특별보좌역으로 1998년 6월 야구계에 복귀한 이상국 씨가 이듬해 12월 박용오 총재를 보좌할 사무총장에 인선될 당시 기자는 반대했다.

개인감정은 없지만 그가 프로야구 원년인 82년 홍보과장서부터 단장인 95년까지 해태에서 보여준 ‘개인기’는 권모술수의 대가로 비쳤고 걸쭉한 사투리는 지방색이 너무 강해 보였다. 정권이 바뀌자 요직을 차고 들어온 것도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웬걸.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고, 선입견은 그를 가까이 대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격식을 가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서부터 야구인은 물론 사무처 말단 직원의 경조사까지 챙기는 정성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해태 시절 연봉협상 때마다 실랑이를 벌였던 선동렬 삼성 감독이 그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것은 이런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단점도 적지 않았다. ‘이상국 마피아’로 불리는 인맥을 형성하는 바람에 주위에 적도 많이 생겼다. 그에 대한 평가도 극단으로 엇갈린다.

하지만 업무에 대한 능력과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SK와 기아 창단, 타이틀스폰서와 방송중계권 다년계약, 프로야구 수익사업체 KBOP 창설 등이 그가 이룬 업적이다.

이런 그가 잠실구장 광고물 수의계약 대가를 받은 혐의로 3일 구속되자 사무총장직을 내놓았다. 대구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그는 혐의 내용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표를 낸 것은 야구계에 누를 끼친 데 대한 사죄의 표시라고 한다.

광주 살레시오고교와 성균관대 재학 시절 촉망받는 육상 단거리 선수로 활약했고 구단 프런트와 최고기구인 KBO 행정가까지 다양한 삶을 살아온 이 씨. 그가 끝내 영어의 몸이 된 것은 개인적인 불행이라고 치고, 걱정이 하나 있다. 병풍 극복, 돔구장 건설, 양대리그 추진 등 야구계의 현안을 이제 누가, 어떻게 풀어야 할까.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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