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멀어진 主流정당의 꿈

  • 입력 2005년 2월 23일 18시 07분


16대 대통령 취임식을 코앞에 둔 1998년 이맘 때. 대선 패배로 망연자실 상태에 빠져 있던 한나라당 지도부에 자문 학자 그룹이 ‘주류(主流·메인스트림)를 대변하는 정당’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당을 추스를 것을 제언한 일이 있다.

비록 대선에서는 졌지만 과반 의석으로 ‘의회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일본 자민당을 모델로 ‘사회 주류세력의 대변 정당’을 자임해 중도-보수층의 지지와 결속을 끌어내라는 주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주류 vs 비주류’의 대립구도는 산업화 세력의 포용과 영남을 향한 ‘동진(東進)정책’을 구상 중이던 DJ 진영에는 위협적 개념이었다. 사석에서 이 얘기를 전해들은 DJ 쪽 핵심 인사가 “그 학자 ×들, 큰일 날 사람들이구먼”이라며 얼굴이 창백해지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곧이어 잇달아 불어 닥친 ‘총풍’ ‘세풍’ ‘병풍’ 등 여권의 파상공세 속에 생존을 위해서라도 강경 일변도로 치달아야 했던 야당 내에서 이 논의는 곧 실종됐다.

주류 논쟁은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다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진영에 의해 ‘반짝’ 제기됐다. 그러나 이미 뒤바뀐 정치 지형 속에서 “서민층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반론에 부닥쳐 곧바로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잃은 지 7년이 지난 지금, 한나라당이 사회 주류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당내에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지역적으로는 영남고립구도, 이념적으로는 우(右)편향, 세대로는 50대 이상이 많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미지를 못 벗고 있다. 여기에 ‘차떼기 당’의 어두운 이미지가 낙인처럼 따라다닌다.

정당 지지율은 지난해 여름 이후 열린우리당을 앞서고 있지만 ‘마의 벽’인 30% 초반을 뛰어넘지 못한다. 최근 불고 있는 ‘고건(高建) 신드롬’도 따지고 보면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인 셈이다.

‘뉴 라이트’로 상징되는 중도세력을 겨냥한 중원(中原) 전투만 해도 한나라당이 크게 재미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말을 삼가고 열린우리당이 조금 ‘우(右)클릭’했을 뿐인데도 여권의 지지율이 금세 높아져 최근 한나라당을 미세한 차이로 추격 중이다. 무엇보다 이벤트성 아이디어만 무성할 뿐 중도-보수를 묶어낼 ‘큰 그림’이 한나라당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한나라당의 가장 큰 비극은 발광체(發光體), 즉 메시지의 발신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런 절박한 상황에 대한 구성원들의 절실한 인식이 감지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처리나 수도 이전 문제에서 보였던 좌고우면의 행보도 그렇지만 당명 개정 문제조차 매듭짓지 못한 채 질질 끄는 모습에 당내 일각에서 “지금의 틀로는 도저히 다음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욱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친(親) 박근혜(朴槿惠)세력과 반대 세력 간의 대립은 당내 정치라는 ‘찻잔’ 속에서는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에게는 답답함만 더해 줄 뿐이다. 한나라당이 여권을 공격할 때 자주 썼던 표현대로 ‘NATO(No Action Talk Only·말만 앞서고 행동은 없는)’형 정당이 돼 가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이동관 정치부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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