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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2월 23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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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대선에서는 졌지만 과반 의석으로 ‘의회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일본 자민당을 모델로 ‘사회 주류세력의 대변 정당’을 자임해 중도-보수층의 지지와 결속을 끌어내라는 주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주류 vs 비주류’의 대립구도는 산업화 세력의 포용과 영남을 향한 ‘동진(東進)정책’을 구상 중이던 DJ 진영에는 위협적 개념이었다. 사석에서 이 얘기를 전해들은 DJ 쪽 핵심 인사가 “그 학자 ×들, 큰일 날 사람들이구먼”이라며 얼굴이 창백해지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곧이어 잇달아 불어 닥친 ‘총풍’ ‘세풍’ ‘병풍’ 등 여권의 파상공세 속에 생존을 위해서라도 강경 일변도로 치달아야 했던 야당 내에서 이 논의는 곧 실종됐다.
주류 논쟁은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다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진영에 의해 ‘반짝’ 제기됐다. 그러나 이미 뒤바뀐 정치 지형 속에서 “서민층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반론에 부닥쳐 곧바로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잃은 지 7년이 지난 지금, 한나라당이 사회 주류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당내에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지역적으로는 영남고립구도, 이념적으로는 우(右)편향, 세대로는 50대 이상이 많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미지를 못 벗고 있다. 여기에 ‘차떼기 당’의 어두운 이미지가 낙인처럼 따라다닌다.
정당 지지율은 지난해 여름 이후 열린우리당을 앞서고 있지만 ‘마의 벽’인 30% 초반을 뛰어넘지 못한다. 최근 불고 있는 ‘고건(高建) 신드롬’도 따지고 보면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인 셈이다.
‘뉴 라이트’로 상징되는 중도세력을 겨냥한 중원(中原) 전투만 해도 한나라당이 크게 재미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말을 삼가고 열린우리당이 조금 ‘우(右)클릭’했을 뿐인데도 여권의 지지율이 금세 높아져 최근 한나라당을 미세한 차이로 추격 중이다. 무엇보다 이벤트성 아이디어만 무성할 뿐 중도-보수를 묶어낼 ‘큰 그림’이 한나라당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한나라당의 가장 큰 비극은 발광체(發光體), 즉 메시지의 발신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런 절박한 상황에 대한 구성원들의 절실한 인식이 감지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처리나 수도 이전 문제에서 보였던 좌고우면의 행보도 그렇지만 당명 개정 문제조차 매듭짓지 못한 채 질질 끄는 모습에 당내 일각에서 “지금의 틀로는 도저히 다음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욱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친(親) 박근혜(朴槿惠)세력과 반대 세력 간의 대립은 당내 정치라는 ‘찻잔’ 속에서는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에게는 답답함만 더해 줄 뿐이다. 한나라당이 여권을 공격할 때 자주 썼던 표현대로 ‘NATO(No Action Talk Only·말만 앞서고 행동은 없는)’형 정당이 돼 가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이동관 정치부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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