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3년 장학퀴즈 첫 방영

  • 입력 2005년 2월 17일 18시 48분


코멘트
“아침에는 네 발로, 낮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이냐.”(스핑크스)

“인간이다. 어릴 때는 두 손과 두 발로 기어 다니고, 커서는 두 발로 걷고, 늙으면 지팡이를 짚으니까.”(오이디푸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이야기. 오이디푸스가 답을 맞히자 스핑크스는 굴욕감을 못 이겨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신화는 전한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퀴즈에도 문제가 주는 긴장감과 정답이 안겨주는 희열이란 극적 요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73년 2월 18일 퀴즈의 이런 묘미가 처음 한국 안방에 전달됐다. 최장수 TV 프로그램인 ‘장학퀴즈’가 처음 방영된 것.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퀴즈 프로그램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파격. 그 배경에는 암울한 유신체제의 방송윤리규정 강화 조치가 있었다. 과도한 상업주의적 경쟁을 지양하고, 국민 교양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독재정권의 방침이 반영된 것이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전국 고등학생의 지혜 대결’에 금방 매료됐다. 장학퀴즈 홈페이지에 따르면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志晩) 씨도 출연 신청을 했다는 것. 이에 제작진은 ‘그렇다면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김종필(金鍾泌) 씨 같은 여야 거물 정치인의 고교생 자제도 함께 출연시키자’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안 청와대 측이 지만 씨의 출전을 없던 일로 했다고 한다.

명문고교 간 자존심 싸움 양상을 띠면서 녹화장에 교장선생님까지 출동해 대규모 응원전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의 명문 K여고 학생은 주장원전에서 5명 중 4등밖에 못하자 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당한 일화도 있다. ‘죄목’은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

반면 기장원을 배출한 한 지방 고교는 교악대를 앞세워 시가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장학퀴즈는 1996년 10월 MBC의 프로그램 개편으로 종영됐다가 청소년과 성인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1997년 1월 EBS를 통해 부활했다.

장학퀴즈가 배출한 역대 퀴즈박사들이 말하는 우승 비결은 한결같이 신문 탐독과 폭넓은 독서. 먼 옛날, 스핑크스의 밥이 될 뻔했던 오이디푸스를 구한 지혜는 어디에서 나온 걸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