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82>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2월 15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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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왕이 진평을 아장(亞將)으로 올리고 번쾌와 함께 광무산으로 보내려 하자 드디어 참지 못한 장수들이 들고 일어났다. 주발과 관영을 앞세우고 한왕을 찾아가 말했다.

“진평이 비록 잘 생겨 겉은 관옥(冠玉) 같으나 그 속은 틀림없이 텅 비어 있을 것입니다. 저희가 듣기에 진평은 포의(布衣)로 있을 때 행실이 좋지 않아 그 형수와 정을 통했다[도기수]고 합니다. 또 처음에는 위나라를 섬겼으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도망쳐 초나라를 섬기러 갔고, 초나라에서 바란 대로 되지 않자 다시 달아나 이번에는 우리 한나라를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그를 높여 벼슬을 내리시고 저희 모든 장수들을 보살피는 호군(護軍)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하지만 진평은 그와 같은 대왕의 두터운 믿음과 아낌에 보답하지는 못하고 사사로운 욕심으로 오히려 우리 장수들의 사기를 해치고 있습니다. 듣기에 그동안 진평은 여러 장수들로부터 금을 받아들였는데, 금을 많이 준 사람에게는 좋은 자리를 내주고, 금을 적게 준 장수에게는 나쁜 일거리를 맡겼다고 합니다. 변덕스러워 섬기던 임금을 자주 저버릴 뿐더러, 신하가 되어서는 그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자이니, 대왕께서는 부디 굽어 살피시옵소서.”

그 말을 듣자 진평에게 빠져있던 한왕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처음 진평이 관중으로 찾아왔을 때도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장수들이 있었으나, 한왕은 그저 오래된 사람들이 하는 텃세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강직하고 과묵한 주발과 관영이 앞장서서 그렇게 조목조목 진평의 잘못을 짚어나가니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이에 한왕은 진평을 불러 벌주기 전에 먼저 그를 천거한 위무지(魏無知)를 불러 꾸짖었다.

“진평이 비록 스스로 우리 한나라를 찾아왔으나 그를 과인에게로 데려온 것은 그대였다. 그리고 내가 진평을 가까이 두고 높이 쓴 것은 그대가 그 재주와 지모를 추켜세우며 과인에게 힘써 천거한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진평은 쉽게 주인을 저버릴 뿐만 아니라, 음란하고 탐욕스럽기 짝이 없는 무리였다. 그대는 진평이 그와 같은 행실을 알고 있었는가, 몰랐는가? ”

그러자 위무지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신(臣)이 대왕께 진평을 천거할 때 말씀드린 바는 그의 능력이요, 이제 대왕께서 신에게 물으시는 바는 그 행실입니다. 지금 만약 진평에게 미생(尾生=다리 밑에서 사람과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홍수가 졌는데도 그 약속을 지키느라 다리 밑에 있다가 끝내 물에 빠져죽은 신의의 사람)이나 효기(孝己=殷의 왕자로 父王이 후궁의 말만 듣고 그를 내쫓아도 끝내 원망하지 않았다고 함)같은 행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천하를 다투는 불같은 싸움터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다스릴 천하가 없다면 그런 사람들을 불러 어디다 쓰시겠습니까?

지금 한나라와 초나라는 바야흐로 천하를 얻고자 생사를 걸고 맞서있는 형국입니다. 신은 그런 때를 만나 다만 남다른 꾀[奇謀]가 있는 선비를 대왕께 천거했을 뿐이니, 생각건대, 지금 대왕께서 따지고 살피셔야할 일은 그가 낸 계책이 나라에 이로울까 아닐까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게서는 어찌 진평이 그 형수를 훔친 것이나 금은 받은 일을 의심하고 계십니까?”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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