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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1월 21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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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경찰들은 바리캉으로 남학생들의 머리를 밀었고 여학생들의 치마 길이를 쟀다. 공항에서는 외국인도 머리를 깎지 않으면 입국시키지 않아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었다.
‘해피(happy)’가 어원이라고도 알려진 ‘히피’의 탄생지는 미국이다. 1960년대 인종차별 반대운동이나 베트남전쟁 개입 반대시위가 반전·비폭력·사랑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발전했고 문화적으로는 록 음악 등을 낳았다. 정치적으로는 신좌익 운동과 결부되었다. 히피의 상징은 남자는 장발, 수염에 목걸이였고, 여자는 긴 머리, 미니스커트가 대표적이었다. 우리나라 초창기 히피 연예인으로는 ‘물 좀 주소’의 한대수가 꼽힌다.
풍요는 고사하고 배고픔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던 당시 어른들 눈에는 젊은이들의 일탈이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은 분명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억압의 시대였다. 물질적 풍요를 얻는 대신 정신적 빈곤이라는, 좀 심하게 말하면 집단적 트라우마(정신적 충격)라는 내면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시절이 30년 넘게 지났는데 아직도 그때에 매달리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주문(呪文) 같은 반복을 통한 나름대로의 치유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나간 과거는 흘려보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더욱이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은 이성적이지도 못하다.
과거는 머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 것이다. 그래야 비탄이나 회한이 없다. 어떤 가수의 노랫말처럼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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