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49>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1월 4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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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너희 100기(騎)는 대왕을 모시고 먼저 북쪽으로 떠나라. 나는 태위(太尉)와 함께 죽기로 싸워 적을 물리치고 너희를 뒤쫓을 것이다.”

그리고는 싸움수레[전거]를 돌진시켜 초나라 군사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노관과 하후영이 그렇게 마주쳐 나가자 그때까지 한왕을 호위하며 따르던 갑사(甲士)와 기병들도 기운을 차렸다. 한왕을 호위하고 달아나기로 되어 있는 100여 기를 뺀 나머지는 함성과 함께 노관과 하후영을 뒤따랐다.

하지만 그 기개에 비해 머릿수가 너무도 모자랐다. 대사마 조구(曺咎)가 이끄는 초군(楚軍) 추격대는 5000이 넘었으나, 되돌아서 덤벼든 한군은 1000도 채우지 못했다. 한군이 죽을힘을 다해 치고 들었으나, 돌진이라기보다는 스며들 듯 초군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호위를 맡기로 한 기장(騎將)이 그 기막힌 광경을 아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한왕의 말고삐를 잡으며 말했다.

“대왕, 서두르십시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저들을 저대로 죽게 내버려두고 가야하는가?”

한왕이 눈짓으로 싸움터를 가리키며 침통하게 물었다. 자신의 말배를 박찬 기장이 한왕의 말고삐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노(盧)태위나 하후(夏侯)태복 모두 제 한 몸은 지킬 수 있는 이들입니다. 대왕께서 무사히 몸을 빼시면 곧 빠져나와 뒤쫓아 올 것입니다.”

하지만 한참을 정신없이 달아나던 한왕이 겨우 추격을 따돌렸다 싶어 돌아보니 적진을 벗어나 뒤쫓아 온 것은 피투성이가 된 노관과 기마 수십 기(騎)뿐이었다….

“영(영)은 어찌 되었는가? 그예 죽고 말았는가?”

이윽고 한왕이 미루어왔던 물음을 노관에게 던졌다. 노관이 무표정한 얼굴로 받았다.

“하후영이나 이 노 아무개나 대왕을 두고 먼저 죽지는 못할 놈들입니다.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입니다.”

“그럼 어찌되었기에 이렇게 늦느냐?”

“대왕께서 넉넉히 피하셨으리라 싶어 저희도 몸을 빼 보니 성한 것은 하후영의 싸움수레와 저희 100여 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쉬어 겨우 다친 몸을 추스르고 대왕을 찾아 나서려는데 다시 적이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하후영이 남은 기병 반을 갈라 뒤딸리고 싸움수레를 몰아 적진으로 돌진했습니다. 자신이 추격을 막는 동안 저라도 대왕을 찾아 잘 지키라는 당부와 함께였습니다.”

“그랬던가….”

“또 적을 만나면 이번에는 저겠지요. 하지만 대왕이 살아 계신다면 저희도 반드시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노관의 말이 씨가 된 듯 갑자기 앞길에서 함성이 일며 다시 한 떼의 초나라 군사가 길을 막았다. 낙담한 한왕의 눈에는 조금 전 조구가 거느렸던 적병보다 훨씬 많은 듯했다. 거기다가 더욱 한왕을 낙담하게 한 것은 앞선 적장이었다. 옹치(雍齒)가 소공(蘇公) 각(角)과 나란히 서서 자신을 손가락질하고 있지 않은가.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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