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정책 현주소]<1>분권 로드맵 어디까지 진척됐나

  • 입력 2004년 12월 12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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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分權)형 선진국가’ 건설은 참여정부의 핵심 과제다. 105개 국정과제 가운데 30개가 이에 해당할 정도의 ‘야심작’이다. 참여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해 7월 ‘지방분권화 작업을 위한 로드맵(단계별 이행안)’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 초 지방분권특별법을 제정, 공포하는 등 분권화 과제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추진 과정에서 상당수 과제의 일정이 늦춰지거나 내용이 축소, 변형되는 등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또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위헌 결정으로 수도 이전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분권화 일정도 차질을 빚게 됐다. 참여정부의 지방분권화 추진 2년을 맞아 분권화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해 보는 시리즈를 5회에 걸쳐 게재한다.》

▽핵심과제 ‘지지부진’=이달 초 수도권 한 지방자치단체의 혁신분권담당관은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부가 올해 말까지 처리하기로 한 ‘일괄이양법’이 국회에서 무산됐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앙정부의 사무를 지방으로 넘기기 위해서 49개 관련 법률을 손질해 하나로 통합 처리하자는 것이 일괄이양법의 주 내용. 국회는 일괄이양 대신 개별 법률을 고쳐 처리하도록 결정했다.

이 담당관은 “당초 지방에 넘겨주기로 한 515개 사무가 중앙부처의 반발로 227개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일괄처리마저 무산됐다”며 “참여정부의 분권화 의지를 높이 샀는데 이번에도 기대를 접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지자체의 분권담당자들 사이에서는 현 정부의 분권화 진행 속도와 방향에 대한 불만이 점차 커지고 있다.

실제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다 되지만 전체 47개 분권 과제 가운데 현재까지 마무리된 것은 △지방분권특별법 제정 △주민투표제 도입 △지방양여금법 폐지 등 3개뿐이다.

나머지 44개 과제도 지난해 7월 발표한 로드맵 일정표에 비해 크게 부진한 편. 핵심과제로 분류되는 중앙권한의 지방 이양, 자치경찰제도 도입, 교육자치제도 개선, 특별지방행정기관 정비 등은 모두 올해 상반기나 연말까지 제정·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자치제는 지난달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초안을 마련했지만 교사 등 교육당사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공개조차 못하고 있다.

지자체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 중인 ‘국세와 지방세의 합리적 조정’ 과제는 지방소비세의 도입과 특별소비세의 지방 이양 등이 검토되다 중앙행정부처의 반발로 논의 자체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지자체의 자치입법권 확대 과제는 학계 일부에서 위헌 논란이 제기되면서 추진 자체가 실종될 위기다.

▽일부 과제는 ‘순항’=중앙의 권한이나 예산, 기관을 지방으로 넘겨주는 핵심과제들과는 무관한 일부 과제는 로드맵에 따라 대체로 잘 추진되고 있다.

자원봉사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은 이미 법안이 마련돼 지난달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지방예산편성지침의 폐지나 지방채 발행 승인제 폐지, 지자체 복식부기회계제도 도입 등을 뼈대로 한 ‘지방재정법’ 개정안과 국고보조금을 안 주는 대신 지방교부세율을 0.83% 올리는 지방교부세법 개정안도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다.

주민투표제는 이미 도입됐으며 주민소송제 역시 개정안이 마련돼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체 원인과 대책=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대부분의 과제가 지지부진하자 지난달 ‘지방분권 5개년 종합실행계획’을 발표하면서 당초 2003년에서 2007년까지이던 로드맵 일정을 슬그머니 2004년에서 2008년까지로 바꿔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과제별 추진 일정 역시 대부분 6개월에서 1년씩 뒤로 늦춰졌다.

이처럼 분권화 작업이 초기부터 지체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중앙행정부처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권한과 예산, 기관을 지방으로 넘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권위의 한 관계자는 “부처 이름을 공개하고 싶진 않지만 상당수 부처들이 사활을 걸고 권한과 예산의 지방 이양을 거부하고 있다”며 “47개 과제 가운데 쉬운 게 단 하나도 없다”고 실토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등은 분권에 대한 마인드조차 없어 걸핏하면 ‘이미 다 내려줬는데 뭘 더 줘야 한단 말이냐’며 분권위에 항의하기 일쑤”라고 전했다.

분권 과제의 추진 방식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47개 과제 중 7개만 분권위가 직접 주관하고 나머지 40개는 행정자치부가 주관하기 때문에 추진속도가 붙기 어렵다는 것. 모든 권한을 지방으로 내려줄 경우 ‘공중분해’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행자부로서는 내키지 않는 분권 과제를 적극 추진할 리 없다는 게 지자체들의 분석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중앙에서 지방으로 내려줘야 할 권한, 돈, 기관은 내려오지 않고 지자체를 감시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주민투표제나 소송제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며 “도대체 분권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윤성식(尹聖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은 “현재 자치경찰제, 교육자치제 등 여러 가지 과제들이 대부분 구체안을 만들기 위한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되면 가시적 성과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중기청 넘겨주고 교부세 후하게”▼

‘지방중소기업청 빨리 내려 보내 주세요.’

지방자치단체장들에 대한 본보의 설문조사에서 지자체장들이 반드시 이관돼야 할 특별지방행정기관으로 가장 먼저 꼽은 기관은 지방중소기업청. 24개 중앙 행정부처의 기관 가운데 지방중기청이 104명으로 가장 많았으며(복수 응답 가능) 이어 지방국토관리청(78명), 지방환경청(73명), 지방산림관리청(45명), 지방해양수산청(40명) 등의 순이었다.

참여정부가 추진 중인 분권화 7대 핵심 과제(자치경찰제 도입, 교육자치제 추진, 특별지방행정기관 정비, 공공감사에 대한 법률안 추진, 자치조직권 확대, 지방재정 확보, 중앙 정부의 사무·권한 이양)에 대해서는 방향과 내용은 대체로 수긍하지만(10점 만점에 4.5∼5.7점) 진행 속도(3.8∼5.6점)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다.

특히 진행 속도와 관련해 지방재정 확보(3.8점)와 자치조직권 확대(4.2점), 교육자치제 추진(4.3점) 등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

또 재정 분권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방교부세의 법정교부율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많았으며 그 다음은 지방소비세 도입, 국고보조금제도 개선, 지방세 신세원(新稅源)의 발굴, 지방소득세 도입 등을 꼽았다.

이번 조사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자치경찰제에 대한 조사. 다른 항목의 경우 대부분 의견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자치경찰제에 대해선 기초단체장 161명이 방향 및 내용을 비교적 후하게 평가(5.9점)한 반면 광역단체장 16명은 3.8점으로 아주 낮게 평가했다.

이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자치경찰제가 기초자치단체에만 설치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지방분권화란▼

지방분권화는 지방자치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일종의 기초 작업. 좁게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이지만 넓게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지방분권적 협치(協治)체제로 바꾸는 ‘정부의 재구조화’ 작업이다. 중앙집권화는 일사불란한 일 처리 등 성장단계에서는 장점도 많았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지나치게 비대해지면서 비효율성이 드러나고 획일적인 규제로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도입됐지만 중앙집권적 통치 전통은 여전하다. 참여정부는 ‘분권형 선진국가’라는 슬로건 아래 자치경찰제와 교육자치제 등 7개 부문에 걸쳐 47개 과제를 확정하고 지방분권화를 추진 중이다.

▼도움말 주신 분▼

김기수(金記洙) 행정자치부 지방분권지원단 총괄기획팀장

김진아(金珍我) 한국지방자치단체국제화재단 전문위원

김형기(金炯基) 지방분권국민운동 공동대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박재영(朴在泳)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지방분권팀장

박진영(朴眞永) 서울시 혁신분권담당관 분권이양팀장

송하진(宋河珍) 행정자치부 지방분권지원단장

윤성식(尹聖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전영평(全永評) 대구경실련정책협의회 의장, 대구대 도시과학부 교수

정세욱(鄭世煜) 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 명지대 명예교수

주용학(朱龍學)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수석전문위원

초의수(楚義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막중(崔莫重)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교수

노무현 정부 지방분권 관련 주요과제 추진 현황
항목로드맵 일정5개년 종합실행계획 일정현재 진행상황평가
중앙권한의 지방 이양올해 말까지 1차 일괄이양법 제정→내년 말까지 2차 일괄이양법 제정→2006년 말까지 3차 일괄이양법 제정로드맵과 동일-1차 일괄이양법 국회 처리 무산
-위원회와 행정자치부, 의원입법 형식으로 개별 처리하기로 변경
분권위가 이미 이양하기로 확정한 227개 사무에 대한 일괄이양법 처리가 무산됨에 따라 앞으로의 이양 일정에 차질 예상
자치경찰제도 도입올해 말까지 개정안 마련→2006년 상반기까지 법제화 및 실시 준비→2006년 하반기 전면 실시로드맵과 동일(전면 실시에 앞서 내년 하반기 시범실시 추가)9월 기초자치단체에 교통, 위생, 환경, 삼림 등에 대해 특별사법경찰권을 갖는 자치경찰제 도입하기로 확정(구체적인 법률안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기초자치단체에 자치경찰제도를 둔다는 방침만 섰을 뿐 구체안 마련이 안 된 데다 현행 정부안의 골격은 ‘자치경찰제’가 아닌 ‘경찰보조원제’라는 비판이 거센 상태
교육자치제도 개선올해 말까지 개정안 마련→내년 말까지 법제화 및 실시 준비→2006년 실시 및 보완실시 시기 등 로드맵 일정 6개월씩 늦춰짐.올해 말까지 개정안 마련.2006년 상반기까지 법제화 및 실시 준비.2006년 하반기 실시 및 보완10월 열린 공개토론회와 11월 열린 관계장관 회의 등을 거쳐 정부안 마련된 상태(아직까지 공론화를 위한 정부안 발표를 미루고 있음)올해 말까지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했으나 아직 교육 당사자나 여론 수렴을 위한 정부안 공개조차도 미루고 있는 상태. 여론 수렴 과정에서 진통 예상
특별지방행정기관 정비올해 상반기까지 실태조사 및 개편안 마련→내년 말까지 법제화 및 이관→2006년 이후 평가 및 보완로드맵 일정 상당히 늦춰짐.올해 말까지 1단계 정비방안 마련.2006년 상반기까지 2단계 정비방안 마련위원회가 10월 6개 기관을 전부 또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하는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대통령의 ‘보완 수정’ 지시에 따라 현재 지방행정기관과 시도 등을 상대로 추가로 여론 수렴 작업 중 특별지방행정기관은 시도와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가능한 한 빨리 이관해 주길 바라고 있지만 중앙행정부처의 반발이 커 이관 대상 기관이 앞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큼
제주특별자치도 추진언급 없음올해 8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추진.올해 말까지 연구 용역 통해 추진안 마련.내년 말까지 가칭 ‘제주특별자치도 특례법’ 제정.2006년 하반기 실시분권위, 제주도가 12월 2일 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를 제출함에 따라 현재 검토 중제주특별자치도안은 제주도에 자치조직권, 인사권, 재정권, 과세권은 물론 세관, 출입국 관리, 검역 업무까지도 모두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홍콩과 같은 국제자유도시를 건설하자는 안. 실행될 경우 분권사상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예상
국세와 지방세의 합리적 조정올해 상반기까지 개선안 마련→내년 말까지 법제화 및 실시→2006년 이후 평가 및 보완로드맵 일정 크게 늦춰짐.올해 말까지 특별소비세 지방이양 방안 마련해 내년 말까지 실시.2006년 말까지 지방소비세 도입 방안 추진중앙부처의 반발 등으로 개선안 검토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하는 일정은 대폭 뒤로 미뤄진 반면 지방세가 국세로 전환되는 종합부동산세 도입은 이미 확정된 상태(재정의 지방이양이 역행되고 있음)
자치조직권 강화올해 말까지 개정안 마련→2006년 상반기까지 법제화 및 실시→2006년 하반기 이후 평가 및 보완로드맵 일정 대폭 늦춰짐.2006년 상반기까지 연차별로 조직권 이양.2006년 상반기까지 자치단체의 책임성 확보방안 강구.2006년 하반기 총액인건비제 도입올해 말까지 총액인건비제 등에 대한 세부안 마련하기로 했으나 논의가 잘 진전되지 않고 있는 상태총액인건비제 등을 둘러싸고 행정자치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이견이 많아 앞으로 일정 차질 가능성이 큼
지방의회의 의정활동 기반 강화올해 상반기까지 개선안 마련→내년 말까지 법제화 및 실시→2006년 이후 평가 및 보완로드맵 일정 일부 늦춰짐. 올해 말까지 지방자치법시행령 개정 추진.2006년 상반기까지 종합제도 개선 방안 추진-7월 국민여론 수렴을 위한 토론회 개최
-10월 지방의회의 자율성 확대를 위한 지방자치법 개정안 국회 제출
전체적으로 로드맵 일정에 따라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내용상 지방의회의 회기 자율성 확대 등 사소한 부분만 개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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