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12>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11월 21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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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계포 장군께서는 벌써 잊으셨소? 우리가 강동에서 처음 강수(江水)를 건널 때 장졸을 합쳐 얼마였소? 겉으로는 큰소리로 몇 만을 일컬었으나 정작 알맹이는 강동의 자제 8000뿐이었소. 우리는 그 군사로 산동을 휩쓸었고, 장수(장水)를 건너 마침내는 왕리(王離)의 15만 대군을 깨뜨렸소. 또 장함의 20만 대군에게서 항복을 받아내고 진나라를 쳐 없앨 때도, 천하 제후들의 군사가 도왔다 하나 내게는 언제나 강동 자제 8000뿐이었소. 지금 한왕 유방이 갈가마귀 떼 같은 군사들을 긁어모아 50만이라고 큰소리치지만 내가 보기에는 왕리의 15만 군사만큼도 못될 것이오. 3만이면 오히려 넉넉하니 두 분은 제나라에 남아 전횡(田橫)을 사로잡고 과인이 이겼다는 소식이나 기다려 주시오.”

그런 패왕의 얼굴에는 걱정하는 그늘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신나는 놀이를 앞둔 아이같이 밝고 환하기만 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계포가 조심스레 물었다.

“장수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종리매(鍾離매)를 비롯하여 환초(桓楚)와 조구(曺咎), 소공 각(蕭公 角) 같은 용장들은 모두 여기에 남겨두고 가겠소. 나는 장군의 외삼촌 정공(丁公)과 날랜 부장 몇이면 되오.”

그때 다시 범증이 걱정했다.

“대왕의 신무(神武)하심은 신이 익히 아는 바이나 아무래도 걱정됩니다. 가뜩이나 적은 군사에 장수까지 갖추지 못하고 어떻게 스무 배 가까운 대군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아부께서는 너무 심려치 마시오. 정도에는 용저와 항타가 있고, 팽성 인근에 가면 또 과인이 수장(戍將)으로 남겨둔 왕무와 정거 주천후 등이 있소. 게다가 구강왕(九江王) 경포(경布)도 이번에는 내 부름을 마다하지 못할 것이오.”

패왕이 그렇게 받았으나 범증은 아무래도 마음 놓이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비틀린 미소와 함께 패왕을 깨우쳐주듯 말했다.

“구강왕 경포는 우리가 제나라를 치러 올 때도 병을 핑계로 군사를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또 한왕 유방이 멍석 말듯 대왕의 도읍인 팽성으로 밀고들 때에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두 손 처매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대왕의 부름에 달려올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패왕은 자신 만만했다.

“그렇소. 한왕 유방이 제후들을 끌어들일 때 내세운 대의명분은 의제(義帝)를 죽인 죄를 묻는다는 것이었으니, 경포는 침현 강물 위에서 의제(義帝)를 죽일 때부터 이미 과인과 한 배를 탄 셈이오. 과인도 경포를 빼고는 더불어 천하를 도모할 사람이 없소. 과인이 부르면 경포는 한달음에 달려올 것이오. 지난 일이 그리된 데는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오.”

그렇게 범증의 입을 막고 그날로 자신이 데려갈 3만 군사를 가려 뽑았다. 하지만 패왕의 군사가 성양을 떠나기도 전에 먼지를 뒤집어쓴 군사 하나가 말을 달려와 알렸다.

“팽성이 마침내 한왕의 대군에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항양(項襄)장군께서는 팽성의 재물과 사람을 거두어 빠져 나오셨으나, 다음날 뒤쫓아 온 한군에게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도 추격을 피하느라 길을 돌다 지금은 노현(魯縣)에 계십니다.”

그 군사는 다름 아닌 항양의 사자였다. 터질 듯한 얼굴로 듣고 있던 패왕이 아무 소리 않고 사자를 물리친 뒤에 범증과 계포를 불러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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