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재호]‘일방주의’를 걱정하십니까?

  • 입력 2004년 11월 9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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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국제적 현안들을 미국이 혼자서 결정하고 집행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걱정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나 일방주의가 무엇인지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냉철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일방주의는 일극체제(Unipolar System)의 산물이다. 일극체제란 1990년대 초 미-소(美-蘇) 양극체제(Bipolar System)가 무너지고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유일한 극(極)국가가 되면서 생겨난 국제체제다. 미국이 단일지도국가로서 세계 평화와 안전을 관리하는 체제다.

세력균형론자들은 일극체제를 늘 불안정한 것으로 본다. 초강대국의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다른 강대국들이 동맹과 전쟁을 추구함으로써 갈등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일극체제는 다극제체(Multipolar System)로 분화하려는 속성을 갖는다’는 말과도 통한다.

이런 분석은 냉전 종식 후 지난 십수년만을 놓고 보면 맞지 않는다.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오히려 강화돼 왔기 때문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미국의 힘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감히 도전하려는 국가도 세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팍스브리타니카 시절의 영국보다도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 이런 체제가 얼마나 갈지 모르나 중국의 급성장을 고려해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미 조지타운대의 윌리엄 월포스 교수는 1999년 ‘일극체제의 안정성’이란 논문에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는 평화롭고 오래 갈 것”이라고 했다.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연합(EU)과 같은 강대국이 있긴 해도 힘이 달리는 데다 자신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기 때문에 미국의 도전자로 나서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월포스 교수의 예측이 빗나갔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어느 국가나 지식인과 정치인은 다극체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약소국일수록 그렇다. 일극체제 하면 폭압적인 제국주의가 떠올라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항상 해체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심한 경우 다극체제는 선(善)이고, 일극체제는 악(惡)이다. 이런 인식은 국제정치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 월포스 교수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일극체제가 다극체제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부시의 일방주의가 비판받고 있기는 해도 미국처럼 인류 보편의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봉하는 나라 중심의 일극체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일극체제 속에서 중심국가의 일방주의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국제체제의 속성이 일방주의를 낳기 때문이다. 냉엄하게 말한다면 일극체제가 제공하는 평화와 안정의 대가로 각국은 주권을 일부 양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극체제에서의 생존전략은 한마디로 ‘편승(Bandwagon)과 동참(Engagement)’이다. 중심국가의 정책에 따라가는 것이다.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마찬가지다. 편승함으로써 안전을 보장받고 그 안에서 실리(實利)를 찾는 것이다. 미국에 너무 경도돼 있다고? 글쎄다. 미국의 동맹으로서 동참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한국이 동맹국의 일방주의를 걱정한다면 왠지 사치스럽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우리가 벌써 지구촌의 휴머니즘을 걱정할 정도로 오지랖 넓은 세계인이 됐는가. 당분간 더도 덜도 말고 편승이나 잘했으면 한다.

이재호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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