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영/與黨안의 ‘마녀사냥’

  • 입력 2004년 7월 8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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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에 해괴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에 반대한 의원을 색출하기 위한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열성 당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체포동의안에 대한 의원들의 찬반 여부를 양심 고백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이에 반대하는 의원도 있지만 7일 현재 50명이 넘는 의원들이 이에 호응해 고백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백 의원 대부분은 체포동의안에 찬성했거나 기권한 의원들이다. 그러나 이 숫자가 계속 늘어나면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의 윤곽이 결국 밝혀질 것이다. 지금 제1당인 집권 여당에서 일어나는 일이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의원 자율성 무시 ‘양심고백’강요▼

우선 의원의 투표결과 공개와 관련된 문제다. 국회법은 인사에 관한 투표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번 체포동의안에 대해 열린우리당도 당론을 정하지 않고 의원들의 자유투표에 맡겼다. 우리 헌법은 정당이 아니라 의원 개개인에게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열린우리당에서는 이 모든 것이 인터넷 포퓰리즘에 밀려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열린우리당 내에서조차 투표결과 공개가 타당한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체포동의안 자체의 타당성 여부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방탄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왜 그렇게 됐는지 여야 모두 심각하게 숙고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과연 국회의원은 검찰이 원하면 언제든지 체포돼도 괜찮은가. 주지하다시피 구속 수사는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는 경우로 국한하는 것이 형사법의 원칙이다. 사실 일반인에 대한 수사도 가급적 불구속 상태에서 하는 것이 인권보호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국회의원의 경우는 더욱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직무수행 문제도 걸려 있다. 이번 체포동의안의 법률적 타당성에 대해서는 여야의 율사 출신 의원 대부분이 의문을 표시했다.

열린우리당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한국 정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의회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칙과 절차에 대한 경시풍조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어느새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자율성은 존중돼야 한다. 인사 사안에 대해 비밀투표를 규정한 국회법도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 필자는 당론을 정해 소속 의원들의 투표를 구속하는 것은 위헌의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이나 당 지도부의 명령이 아니라 소속 의원들의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할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여당을 통한 대통령의 국회 장악이 한국 정치의 치명적인 병폐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과연 그러한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의 노선과 어긋나는 투표를 했다고 마녀사냥 식으로 찾아 출당의 위협까지 가하는 분위기에서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이 얼마나 보장될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여야관계에도 악영향 미칠듯▼

이번 사건이 여야 관계에 미칠 파급 효과도 생각해야 한다. 상생이 공생은 분명히 아니다. 서로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도와주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점에서 체포동의안 부결에 그런 동류의식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자성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권 내에 인터넷 포퓰리즘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개혁구호가 강화되고 의원들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약화된다면 여야관계는 상생이 아니라 싸움판으로, 경쟁이 아니라 정쟁으로 전락할 것이다. 여당이 잘해야 야당이 발전할 수 있고, 야당이 잘해야 여당도 발전한다. 그게 상생의 원리이다. 보다 차원 높은 한국 정치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17대 국회 개원 이후 불과 한두 달 만에 물거품이 되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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