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유전자 시대의 적들’…유전자정보 수호 작전

  • 입력 2004년 7월 2일 1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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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나선형 유전체에 대한 정보를 인류의 공동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돈의 유혹을 뿌리치고 힘을 합쳐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소수의 독점으로부터 지켜냈다.사진제공 사이언스 북스
과학자들은 나선형 유전체에 대한 정보를 인류의 공동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돈의 유혹을 뿌리치고 힘을 합쳐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소수의 독점으로부터 지켜냈다.사진제공 사이언스 북스
◇유전자 시대의 적들/존 설스턴·조지나 페리 지음 유은실 옮김/432쪽 1만8000원 사이언스북스

1996년 2월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던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북대서양 버뮤다에 모였다. 이 회의에서 이른바 ‘공유의 예절’이라는 문제가 본격 제기됐다. 그곳에 온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유전체(Genome) 염기 분석을 모두 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일을 해야만 했고, 함께 일을 진행하는 데는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예절이 필요했다.

이 책의 저자인 존 설스턴을 포함해 다수의 참석자들이 무료로 데이터를 공개한다는 원칙을 세우기로 했다. 논의 끝에 “유전체 염기 분석과 합성에 관한 각자의 연구 성과를 모두 공개하고 이를 연구자와 개발자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의 ‘버뮤다 원칙’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1998년 제약회사와 연결돼 있던 미국 연구자 크레이그 벤터가 “3년 안에 인간 유전체 염기를 완전히 분석하겠다”며 “회사(셀레라 제노믹스)를 설립해 유전 관련 의학정보의 원천적 제공처가 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결국 유전정보를 독점해서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었고 연구자들이 ‘버뮤다 원칙’을 통해 어렵게 지켜내려 했던 ‘공유의 예절’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과학자 설스턴과 영국의 과학 저술가인 조지나 페리가 함께 쓴 이 책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이 이 프로젝트의 성과를 인류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싸워 온 투쟁의 기록이다.

유전체 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유전체 정보의 특허를 보장하는 것이 연구자들의 연구의욕을 북돋아 과학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설스턴은 “유전체 정보의 특허를 보장하면 정보이용료의 부담이나 특허권 침해와 관련된 법적 문제에 휘말릴 것을 꺼리는 생물학자들이 유전체 정보를 이용한 연구에 참여하기를 피하게 돼 결과적으로 과학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비판한다.

물론 설스턴이 모든 특허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각 회사가 유전체 염기에 대한 정보를 활용해서 발명한 약이나 진단 키트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염기 그 자체에 담겨 있는 정보에 대한 권리를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설스턴 같이 유별난 소수 과학자들의 망상이 아니다. 저자들은 유전체 연구에 참여했던 대다수의 과학자, 그리고 오늘도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정신을 갖고 있다고 증언한다.

벤터가 인간 유전자지도를 조기에 완성하겠다고 하자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던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힘을 합쳤다. 그리고 2000년 6월, 인간 유전자지도 초안을 조기 발표해 벤터의 야욕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2003년 인간 유전자지도를 완성했다.

유전체 연구 성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엄청났기 때문에 벤터뿐만 아니라 주요 연구자들 모두가 언제나 막대한 이권의 유혹을 받았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가 이런 유혹을 뿌리치고 전 인류를 위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목은 ‘공동의 나선(The Common Thread)’이다. 즉 나선형의 유전체에 대한 정보가 인류 모두의 것임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나 설스턴의 이야기는 유전체 연구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우리는 개인 소유권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시대에 살면서 공공의 선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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