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훈/院구성도 못하면서 국정조사?

  • 입력 2004년 6월 27일 18시 54분


만두파동을 계기로 제출된 ‘식품위생법 개정안’ ‘이라크 추가파병 중단 및 재검토 결의안’ ‘건강보험, 국민연금법 개정안’ ‘군의문사 진상규명특별법’ ‘태평양전쟁 희생자 생활안정법안’….

17대 국회 개원 후 국회에 접수된 의안들이다.

대부분 소관 국회상임위가 우선 심의해야 할 78건에 이르는 이들 의안은 현재 국회 원구성이 지연되면서 먼지만 쌓이고 있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여야의 공언과 달리 17대 국회가 지금까지 한 일이라고는 심하게 말해 ‘알짜 상임위원장’을 차지하기 위한 ‘밥그릇 싸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는 27일 김선일씨 피살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무고한 국민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정부를 못 믿겠으니 국회라도 속 시원히 사건을 파헤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국정조사 발표를 보면서 해야 할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회가 국정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고, 특별위원회의 위원은 국회법 48조에 ‘의장이 상임위원 중에서 선임한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상임위가 구성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법률적 근거에 따라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을 선임하겠다는 것인지 의아할 뿐이다.

열린우리당은 “긴급하고 광범위한 의혹 사안에 대해 교섭단체간 협의가 있는 경우 예외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회법 어디에도 ‘긴급하고 광범위한 의혹 사안에 대해 예외를 인정한다’는 조항은 없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스스로 법을 어긴다는 모순은 차치하더라도, 국정조사를 하기 위해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일이든 상식과 원칙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옳다. 국민은 누가 법사, 운영위원장을 맡든 관심이 없다. 여야가 한 걸음만 물러서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국회 정상화’부터 먼저 해놓고, 국정조사를 하는 게 상식과 원칙에 맞지 않을까.

이훈 정치부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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