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호원/국방부가 할 말이 없다니…

  • 입력 2004년 5월 20일 19시 01분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방침이 알려진 17일 국방부에서도 이 사안에 관한 브리핑이 열렸다. 외교통상부가 오전 9시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주한미군 차출의 배경과 향후 과제 등에 관해 대국민 발표를 한 1시간 뒤였다.

그러나 국방부는 브리핑에서 뜻밖에도 ‘외교통상부에서 이미 기자회견을 했으니 그곳에 물어보라’는 식의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남대연(南大連) 공보관은 “국방부장관도 주한미군 차출을 (외교부와의) 전화통화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입장과 대비책을 들으려던 출입기자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국방부는 오후 5시반 다시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안보에 전혀 영향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회견에서 권안도(權顔都) 정책실장은 “이달 초 열린 미래 한미동맹정책 구상회의에서도 주한미군 차출 이야기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방부는 주한 미군 차출 같은 중요한 사안이 한미간의 사전 협의조차 없이 결정된 데 대한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우린 어쩔 수 없었다’는 해명에만 치중했다.

조영길(曺永吉) 국방부장관은 1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할 때까지 아예 언론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이날 오전 국회 출석을 앞두고서야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을 만났다. 주한미군 차출이 알려지고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같이 굼뜬 국방부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머리에 떠오른 것은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때 다른 부처들이 보여준 대응 자세였다. 일례로 3월 12일 국회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는 정부과천청사에서 정부중앙청사 등을 오가느라 점심을 떡으로 때우며 한강다리를 세 번이나 넘나들었다는 후문이다. 이날 이 부총리는 경제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아홉 차례나 긴급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국방부는 “대북 방어태세와 국방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어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고 뒤늦게 해명하고 나섰다. 안보 공백이 우려되는 긴급한 상황에서 국방부가 보여준 ‘나 몰라라’식 태도가 국민의 불안감을 부채질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호원 정치부기자 bestig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