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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6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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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재산세는 면적 건축연도 등을 기준으로 세액을 정하는 이른바 ‘원가방식’으로 부과됐다. 이는 동일한 규모의 주택에 대해 동일한 재산세가 과세되는 방식이므로 지역간 주택가격의 격차가 없을 때에는 공평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서울과 지방, 강북과 강남간의 가격차가 큰 경우에는 당연히 과세의 불공평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자치區 ‘밀어붙이기’말아야▼
이에 따라 정부는 원가방식을 폐기하고 올해부터 국세청 기준시가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시가방식’으로 전환했다. 아파트의 시가가 재산세 부담 수준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높은 주택 가격에 비해 비교적 낮은 재산세를 부담하던 서울의 강남 서초 송파구 등지에서 강한 반발이 일고 있다. 반면 행정자치부는 이미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된 사항을 재검토하거나 번복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조세는 납세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부를 재분배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조세정의 없이는 사회정의란 있을 수 없다’는 대원칙은 보유세인 재산세에 있어서도 가감 없이 적용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재산세를 납부하는 사람들은 조세의 공평성이라는 세법의 이념보다는 작년에 납부한 재산세와 비교해 반응하는 것이 상식이라는 점에서 세 부담이 최고 다섯 배까지 한꺼번에 늘어나는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특히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등은 남편의 월급에서 원천징수하는 것이 아니라 주부들이 납세고지서를 들고 직접 은행에 가서 납부하는 ‘주부세’인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주부들의 조세불복종운동’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정부와 서울시, 자치구는 재산세 개편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상태를 빠른 시일 내에 해소하고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우선 자치구는 재산세 인상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곤란하다. 사실 지자체의 장이나 의원들은 그동안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 재산세 과표 인상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강남권의 자치구들은 고가의 주택에 살면서도 언제까지나 낮은 세금을 내면서 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또한 ‘세금폭탄’이니 하는 볼멘소리를 하기보다는 늘어나는 재산세 수입을 어떻게 주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쓸 것인지 연구하고 주민들에게 제시하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정부와 여당도 보다 신중한 대응자세가 필요하다. 여권에서는 다른 기초단체로 파급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범케이스’ 차원에서라도 강남구를 단단히 손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런 식의 대응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치단체에 부여된 탄력세율을 현행 50%에서 30%로 축소토록 지방세법을 개정하겠다”, “재산세를 구세(區稅)에서 시세(市稅) 또는 국세(國稅)로 전환하겠다”는 등 현재 여권에서 거론되는 대응 방안들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자칫 자치단체에 보장된 헌법상의 자치권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할 수 있을 뿐더러 정부와 자치구간 불신의 골만 깊게 할 뿐이다.
▼공평과세 합리적 설득 노력을▼
이러한 문제는 시간을 두고 충분한 여론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친 뒤 결정해야 한다.
정부의 재산세 인상안은 이처럼 원천적으로 중앙정부와 지자체간에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는 사안이다. 이 점에서 정부는 재산세 문제가 이른바 ‘강남 때리기’의 포퓰리즘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해당 지자체도 재산세 인상이 공평과세의 실현을 통해 조세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전기가 되도록, 서로가 한 발짝씩 물러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김성수 연세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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