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7년 ‘킨제이 性연구소’ 설립

  • 입력 2004년 4월 7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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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진화론 이래 이보다 더 충격적인 과학서는 없었다.”(뉴스위크)

‘킨제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1948년 출간된 ‘남성편’이 논란의 불길(flame)을 댕겼다면 그 5년 뒤 ‘여성편’은 지옥의 불바다(inferno)를 이루었다.

보고서는 미국 남성의 92%, 여자의 62%가 자위행위를 즐기고 있으며 동성애를 한 번 이상 경험한 남성이 37%, 여성이 19%에 이르고 있다고 터뜨렸다. 여성의 혼전관계(50%)와 혼외정사(26%)도 통계로 들춰냈다.

미국 전역에 걸쳐 1만8000명을 인터뷰한 결과다.

귀엣말로나 속닥이던 은밀한 성(性)이 까발려졌을 때, ‘배꼽 아래’ 일상(日常)이 낱낱이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것은 일대 문화적 사건이 되었다.

미 여권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킨제이 보고서가 여성의 성해방을 위한 ‘권리장전’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마거릿 미드는 “무지(無知)와 지식의 형평을 무너뜨려 사회불안을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1950년대 미국사회는 보수적이었다. 성에 대해 완고했다. 여성의 오르가슴을 경멸하고 순결을 강조했다. 자위행위와 동성애를 죄악시했다.

매카시즘의 선풍이 거셀 때였다. 우파(右派)는 보고서를 매우 불온하게 여겼다. 종교단체와 언론도 가세했다. 견디다 못한 록펠러재단은 ‘킨제이 성 연구소’에 대한 기금지원을 끊고 만다. 1947년 설립된 연구소는 보고서의 산실이었다.

킨제이는 원래 나방을 연구하던 동물학자였다. 정치를 몰랐다. 성의 터부를 깨부수는 게 정치적으로 그렇게 민감한 이슈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50여년이 흐른 지금, 세계의학회는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했다. 만병의 근원이라는 자위행위는 여성의 불감증 치료를 위해 버젓이 ‘시술(施術)’되고 있다.

아날(anal)이나 오럴(oral)섹스도 도착이나 변태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상호 동의 아래 이뤄지는 성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최대한 관용해야 한다….” 현대 성의학의 기본 입장이다.

바야흐로 정상위(正常位)는 ‘앤티크(antique)’가 되어가고 있는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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