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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2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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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제후가 제물(祭物)이 될 소가 끌려가는 것을 목격하게 됐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겁에 질린 모습을 보고 애처로움을 느낀 제후는 그 소를 놓아주라고 명을 내렸다. 그러자 제사를 담당하는 관리가 물었다. “제사를 중단할까요?” 제후가 대답했다.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대신 소를 양으로 바꿔라.”
맹자는 이 모습을 보고 이 제후가 선정(善政)을 베풀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죄 없는 동물을 제물로 희생시키는 제도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겁에 질린 소를 보고 가슴아파하며 마음이 흔들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제후가 인자한 성품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7대학 동양학부 교수인 저자(철학)는 동아시아의 고전인 ‘맹자’에 전해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서양에서 무너진 도덕의 기초를 다시 세울 가능성을 찾았다.
그에 따르면 서양에서 도덕은 전통적으로 플라톤의 ‘선(善) 이데아’ 또는 기독교의 ‘신’에 의존해 왔지만 이런 절대적 도덕은 독단성이 너무 강해 시대가 흐르면서 오히려 회의주의를 낳게 됐다. 그러자 칸트는 신(神) 대신 이성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도덕의 기초를 세우려 했고, 니체는 도덕의 계보를 추적해서 도덕이 지배욕의 도구였다고 폭로했다. 다시 마르크스는 도덕이 기존질서를 공고히 하고 대중을 착취하는 도구의 기능을 했다고 비판했고, 프로이트는 도덕의식이 유년기에 부모의 이상화된 형상이 투여돼 나타나는 ‘초자아’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신으로부터 벗어나 인간 스스로 도덕의 기초를 마련하려 했던 서양 철학자들의 시도가 이렇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문화와 도덕의 다양성을 나열하는 포스트모더니즘뿐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맹자’다. 동양의 고전인 ‘맹자’와 서양의 계몽철학자들을 비교하면서 보편적인 도덕의 기초를 다시 마련해 보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앞에 인용한 한 제후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도덕성’이란 어떤 한 비참한 사태 앞에서 전개되는 ‘불인(不忍)의 반응’”이라고 말한다. 이 ‘불인의 반응’, 즉 차마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마음이란 곧 유가의 기본 덕목인 ‘인(仁)’을 가리킨다. 또한 “자기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바로 ‘의(義)’”라고 해석한다.
그는 유가 윤리의 기본 덕목인 ‘인’과 ‘의’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개념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맹자의 도덕은 이렇게 개인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식할 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신의 명령이나 개인의 이성적 판단 또는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연계성 속에서 스스로 파급력을 가지고 확충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맹자’에 비추어 서구의 도덕을 돌아보는 이 프랑스인의 시각을 통해 우리는 그저 상식으로 받아들여 온 유교의 전통적 도덕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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