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18회…셔플 X 운명의 고리 (5)

  • 입력 2004년 3월 5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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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이우철이 달리면 여자가 따라 달린다는 소문이 있어요.”

“여자는 달리지 않고…기다리지…앞서 가서 기다리든지, 제자리에서 꼼짝 않고 기다리든지…아무튼 기다려…아이고, 머리로 피가 몰리네.”

“하지만 사모님은 달릴 것 같은데요. 달리고, 또 달리고, 세상 끝까지 아저씨를 좇아갈 것 같은데요.”

“…그런가?”

“아저씨가 일본에 있을 때 여자아이가 태어났잖습니까. 그때 우리 어머니하고 마누라가 거들었습니다.”

“고맙군.”

“같은 동네 사는데 당연하죠. 하기야 지금은 바로 이웃에 살면서 서로 밀고하고 죽이고 하니까…그런 생각하면 지금 처지가 불쌍해요. 어떻게 생각하면 왜놈에 대한 한으로 민족이 하나가 되었던 일제강점기가 차라리 평화로웠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그 아이는 지금 몇 살입니까?”

“세 살이겠지…마누라가 아마 서른둘이 됐을 테니까, 신화가 마지막 아이일거야.”

“전부 몇 명입니까?”

“첫 마누라가, 하나 둘…큰딸 미옥이는 정희의 음모로 조음리 가난한 농가로 시집갔고, 셋째 딸 신자는 정희의 학대를 참다못해 부산에 있는 친척집으로 도망가고…OK 카페 댄서가 낳은 아이가 하나…셋째 아들 신철이는 4년 전 한밤중에 친엄마가 와서 몰래 데려가 버렸어…그래서 정희가 낳은 아들만 남았으니까…사내아이가 하나 둘, 여자아이가 하나 둘…신명…신호…신희…신화…아이고, 팔 아프다…옛날에는 물구나무선 채로 팔굽혀펴기를 쉰 번은 했는데….”

나이든 죄수는 거꾸로 선 채로 젊은 죄수에게 다가갔다가 좌우 팔을 활짝 벌리고 변기통 구멍을 지나 긴 다리를 천천히 내렸다. 그러고는 바로 꺼끌꺼끌한 마룻바닥에서 복근운동을 시작했다.

“고문 때문에 상한 몸으로 용케 운동을 합니다. 역시 운동선수는 다르군요…지난 20일 동안 많은 운동선수들이 끌려 왔죠…유도의 김유헌…축구 골키퍼였던 박홍진…권투의 김남용….”

“김남용 선수는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취조관이 화장실에 간 틈에 가위로 배를 찌르고…아이고, 놈들이 병원에 데리고 간다고는 했는데…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글 유미리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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