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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20일 22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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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곧 21세기 최전선으로 내던져지려고 하는데도 여러분의 머릿속은 여전히 19세기 이전의 것들로 가득 차 있고, 20세기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릅니다.”
일본 도쿄 시내의 한 빌딩에서 철학 역사학 생물학 물리학 뇌의학 천문학 등 온갖 분야를 넘나들며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저자가 도쿄대 신입생들에게 던진 일성이다.
그가 제시한 1998년도 통계에 따르면 일본 고교생들이 배우는 자연과학 교과서의 주요 내용은 대부분 19세기의 성과물들뿐이다. 21세기 학생들이 최소한 배워둬야 할 20세기 자연과학의 성과, 즉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 분자생물학 등이 고교 과정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프로페셔널 제너럴리스트’를 자처하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가 도쿄대 교양학부에서 96년 여름학기에 ‘인간의 현재’를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당시의 강의 속기록이 보완돼 97년 6월부터 98년 6월까지 월간지 ‘신초(新潮)’에 연재됐고, 저자는 이 연재물을 다시 손질해 2000년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 스무 살, 자기 뇌에 책임질 나이
그는 도쿄대 신입생들에게 무엇보다 “젊을 때 최대한 많은 사상적 외도를 해야 한다”고 권한다. 스무 살 무렵은 어떤 편견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나이이므로 이 시기에 많은 정신적 외도를 해야 사고도 유연해지고 그에 따라 삶도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경직된 사고나 사상적 편협성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으로 몰아넣었는지에 대해 반복 설명하며 “일본 사회는 ‘빨간 신호등이라도 모두 함께 건너면 두렵지 않다’고 하는 이들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라고 우려했다.
“마흔 살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지만, 나는 스무 살이 넘으면 자기 뇌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도쿄대의 젊은 학생들에게 스무 살 무렵의 뇌는 아직 성인의 뇌가 아니라 왕성하고도 유연하게 성장하고 있는 과정의 뇌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약 50쪽에 걸쳐 뇌의 구조와 작용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대학 담장 너머는 곧 전선과 같습니다. 전장에 비유하자면 참호 속을 기어다니며 24시간 내내 총을 쏴야 하는 현장입니다. 매일 전사자가 나오는 현장이지요. 4년 뒤 그런 곳에 투입될 각오가 돼 있습니까?”
● 지(知), 나와 세계의 관계를 아는 것
그가 ‘21세기 전사’들을 위해 첫째로 제시한 것은 자연과학 공부다. 과학의 세기인 21세기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그 전선을 헤쳐 나갈 ‘도구적 지식’을 습득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사나 경제사가 아니라 ‘지(知)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인간의 ‘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둘러싼 이 세계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결국 인간의 ‘지’란 인간 자신 및 자신을 둘러싼 타자 또는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다. 자연과학에 대한 공부 역시 이런 ‘관계’에 대한 전반적이고도 정확한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르네 데카르트, 토머스 헨리 헉슬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먼 등 고금의 지성들을 넘나들며 그가 추구하는 ‘지’의 세계는 바로 이 관계를 온전한 전체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에 이어 그가 제2권으로 준비하고 있는 책의 제목은 ‘진화와 코스몰로지(cosmology·우주론)’. 제1권에서 ‘단련된 뇌’ 앞에는 멀고 먼 ‘지’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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