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이 천사]<6>문경제일병원 최현숙간호사

  • 입력 2004년 2월 6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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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째 진폐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최현숙 간호사. 그는 “이들에게 한 줌의 공기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문경=이권효리자
19년째 진폐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최현숙 간호사. 그는 “이들에게 한 줌의 공기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문경=이권효리자
경북 문경시 점촌동 돈달산 중턱에 있는 문경제일병원 진폐(塵肺)요양병동. 매일 오전 7시반이면 출근하는 최현숙(崔賢淑·41) 간호사는 맨 먼저 병실 입구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부터 살핀다. 밤새 환자들이 각혈을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서다.

입원 중인 진폐 환자 270여명 가운데 밤새 누군가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는지 마음을 졸이며 산 지 어느새 19년.

진폐증은 석탄가루 등이 장기간 폐에 쌓여 생기는 불치병. 광업중심지였던 이곳의 탄광은 거의 문을 닫았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진폐환자들은 아직도 남아 있다.

전국 26개 병원에서 진폐증으로 요양 중인 환자는 3000여명. 현재 진폐재해자협회에 등록된 환자는 7만여명에 달한다.

최씨는 대구의 간호대학을 졸업한 1986년 1월 고향인 문경에서 처음으로 진폐환자들을 만났다. 이 병원은 진폐증 진료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윤임중 박사(72)가 원장으로 근무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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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는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진폐환자들에게는 가장 불공평한 것입니다. 진폐병동에서 근무하면서 마음대로 숨을 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진폐환자들은 겉으로는 멀쩡하다. 그러나 이들의 폐는 석탄가루 등으로 인해 용량이 줄어들어 매우 작아져 있는 상태. 따라서 호흡할 수 있는 산소의 양도 극히 적을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폐로 가장 적은 양의 공기를 마시며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다. X선 촬영을 하면 폐가 하얗게 나온다.

“이분들은 밥도 마음대로 먹지 못합니다. 서너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찹니다. 밥보다는 산소가 더 필요하니 산소가 밥인 셈이죠.”

이렇다 보니 ‘막가는 인생’이라며 술과 담배를 입에 물고 물건을 던지며 행패를 부리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함께 간호사의 길에 들어섰던 동료들은 이런 일들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떠났다.

하지만 그는 89년 같은 고향 사람인 남편(43·문경시청 7급 공무원)과 결혼하면서 진폐환자들과 함께 숨쉬는 것을 아예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환자들 앞에서 간호사가 숨을 마음대로 쉰다는 게 죄송했어요. 또 야속하게 생각할까봐 병원을 떠나기 어려웠고요.”

그는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13)을 가져 만삭이었을 때도 100여개나 되는 병실을 돌며 환자들 돌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체념한 환자들에게 작은 용기라도 주고 싶어 2000년에는 환자들이 소일거리로 만든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이렇게 2년마다 여는 전시회는 병원 분위기를 확 바꿔놓았다.

환자들은 최씨를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산소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최씨의 헌신적인 돌봄이 점차 환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그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술이나 담배는 사라진 지 오래고 행패를 부리는 환자도 없어졌다. 전국 곳곳의 진폐환자와 가족들은 아쉬울 때면 그에게 연락을 해 온다.

9년째 입원 중인 이연운씨(63)는 “최 간호사 때문에 그마나 내가 숨을 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는 병원 밖에 있는 환자들을 찾아 나설 생각입니다. 지난해 스무 분이 숨지고 스무 분이 새로 입원했어요. 몸 상태가 어떤지 모르고 가느다란 호흡에 의존한 채 세월만 보내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불치병이지만 진폐환자들을 더 가까이서 껴안고 싶어요.”

나이팅게일 사진이 걸려 있는 그의 사무실 한쪽에는 빈 링거액 캔이 쌓여 있다. 봄이 오면 캔에 국화를 심어 환자들과 함께 가꿀 생각에서다.

문경=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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