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93…목격자(9)

  • 입력 2004년 2월 4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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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렇군요, 춘식이란 이름의 유래를 설명해야겠군요. 그러니까 호하고는 좀 다릅니다. 그의 형인 이우철이가 말이죠, 우근이가 태어나기 전에 춘식이란 이름을 생각해 두었던 모양입니다. 결국은 아버지가 지은 우근이 이름이 되었지만요. 그리고 왜놈 때문에 창씨개명을 해서, 이씨 성이 구니모토가 되면서부터입니다. 그는 구니모토 우곤이란 일본식 이름을 거부하고 이춘식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죠. 봄에 씨를 뿌려 싹이 트고, 쑥쑥 자라 마침내 큰 나무가 되는… 공산주의 혁명으로 모든 지배계급을 타파하고, 모든 착취와 억압과 차별과 계급투쟁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평화를 획득하면, 그 나무 아래서 다시 만난다는 희망이 담긴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네, 분명히 공산주의 혁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춘식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한 열여덟 살 때부터 공산주의자였습니다… 나요? 절대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아, 감사합니다… 아이구, 목이 너무 말라서… 한 잔만 더… 아, 시원하다… 빨갱이는 파리죠…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다 잡아 족쳐야 합니다… 이제 친구도 아니죠… 적입니다… 이우근은 나의 적입니다.

나는 똑똑하게 봤어요. 이우근이 서대신동 공터에서 경남상고 학생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더군요. 우리는 조선의 분열침략 계획을 실시하는 국연 조선위원회에 반대한다! 국제 제국주의의 앞잡이 이승만, 김성수 등 친일반동파를 타도하라! 남조선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한다! 인민위원회에 정권을 넘겨라! 춘식이가 신념에 넘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면, 학생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하고 외쳤습니다. 헉헉거리며 뛰어온 학생이, 경찰이 온다, 도망쳐, 라고 하니까 춘식은 백조처럼 긴 다리로 연대에서 껑충 뛰어내려와… 달렸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박수소리가 일더군요… 정말 멋있었습니다…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치 쫓고 있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 빛났습니다… 그 학생들 모두가 춘식이와 함께 공산주의혁명을 일으키자고 다짐을 했을 겁니다. 춘식이는 그들의 빛이었으니까요. 부산 학생들에게는 2·7 구국투쟁을 주도한 이승엽이나 김삼룡보다 영향력이 컸습니다… 네에… 그러니까 그냥 잡아들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죽여 없애야 합니다.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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