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정채원, '적막'

  • 입력 2003년 12월 22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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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내리는 폭설이다

바람마저 잠든 깊은 산속

자꾸만 쌓이는 눈의 무게를

이를 악물고 견디던 소나무 가지 하나

마지막 비명을 내지르며

끝내, 자결한다

적막강산이 두 동강 나는 소리

나를 후려치는 죽비소리

솔잎처럼 퍼렇게 멍든

내 안에 깃들던 잔 시름들

화들짝, 산새처럼 놀라 깨어

일제히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시집 '나의 키로 건너는 강'(시와 시학사)중에서

어느 시인이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고 말한 것처럼 ‘소리의 바탕은 적막이 마땅하다.’ 시끌시끌한 소음들 틈에서는 ‘적막강산이 두 동강 나는 소리’도, 정신을 후려치는 죽비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흰눈을 얹은 솔가지 하나 와지끈 부러지는 소리. 깃털처럼 가벼운 눈발이 무게가 될 줄 알았으랴. 네가 넘어지는 소리에 내 발걸음 고쳐 걷는다.

내 안에 잔 시름들도 저 눈발처럼 정신의 우듬지를 휘고 있으면 어쩌랴. 산새처럼 날아간 시름, 산새처럼 돌아올지라도 겨우내 저 깊은 적막강산에 들고 싶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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