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박승철/익힌 닭고기 '조류독감' 걱정없다

입력 2003-12-17 18:22수정 2009-10-1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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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은 한국 국민이 사스와 푸젠(福建)A형 독감 등 호흡기 바이러스 전염병의 파상 공격을 받으며 지낸 한해다. 아직까지 이들 전염병으로 인한 직접적인 인명 피해가 없어서 매우 다행이다. 그러던 차에 최근 충북 음성군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해 한 양계장에서 키우던 닭 2만여마리가 폐사됐다. 원인이 조류독감 바이러스인 A/H5N1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방역 당국과 전염병 전문가들이 깜짝 놀라 즉시 방역활동에 돌입한 것이다. 조류독감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긴장하고 문제의 양계장을 중심으로 반경 10km를 철통같이 막아버리는가.

독감에는 크게 2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파나마, 푸젠, 텍사스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독감으로 매년 조금씩 다른 종류가 유행한다. 10, 20년간 해마다 같거나 비슷한 종류가 유행하므로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면역을 갖고 있으며, 효과적인 예방접종약도 있다. 하지만 이런 독감도 인명피해는 크다. 이로 인한 인명 손실이 미국에서만 1년에 2만∼3만명이나 된다.

다음으로 슈퍼독감이 있다. 조류독감 같은 신종독감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는 인류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오래전에 유행했다가 아주 낯설어질 때 다시 유행하는 것이다. 우리 인체는 이 슈퍼독감에 면역력이 없을뿐더러 예방약도 없으므로 인명피해가 대단히 크다.

독감이나 슈퍼독감, 사스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인수(人獸) 공통전염병의 개념을 이해하면 의문이 풀린다. 사람과 동물은 각자의 전염병을 갖고 있지만 닭 오리 쥐 돼지 개 등 특히 사람과 가까이 사는 동물의 전염병균이 변이를 일으키면 사람을 침범할 수 있게 된다. 사람 전염병의 거의 대부분이 사람과 가까운 동물에게서 옮겨왔다고 보면 된다. 유행성출혈열, 뇌염, 쓰쓰가무시 등이 그러하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독감이다.

독감이 매년 크건 작건 새로운 유행을 일으키는 원인은 사람 독감 바이러스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돼지 몸속에서 유전자가 섞여 재조합되면서 새로운 독감바이러스로 변형돼 나오기 때문이다. 이 중 유전자 재조합이 원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 ‘보통형’으로 유행하고, 변이가 많으면 ‘슈퍼형’이 되어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키게 된다.

이번에 발견된 조류독감은 발생이나 전파 과정이 종전과 좀 다르다. 이번 A/H5N1은 1997년 닭에서 사람으로 직접 전파되는 이례적인 경로를 밟았다. 새로운 독감이란 점에서는 긴장하고 있으나 1997년과 2003년 중국에서 발생한 뒤 크게 유행하지 않은 점으로 봐서 아직은 사람에게 만연할 것 같지 않다. 따라서 지금의 조류독감을 슈퍼독감으로 봐야 할지 의문이다. A/H5N1의 예방접종약은 없으나 항바이러스제로 예방이 가능하므로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조류독감이 발생해 닭을 폐사시키고 계란을 버리고 있다. 심지어 멀쩡한 닭고기와 계란까지 못 먹게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과민반응이다. A/H5N1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다. 우리는 닭고기를 날로 먹지 않는다. 닭백숙 전기구이 통닭 등 모든 닭고기나 계란을 먹을 때는 가열을 하니 소독해서 먹고 있는 셈이다. 조류독감이 발생했다고 해도 닭고기는 안심하고 먹어도 좋을 듯하다.

박승철 고려대 의대 교수·감염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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