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여림, '어린 시절의 밥상 풍경'

  • 입력 2003년 11월 19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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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언제나 저녁을 드시고 오셨다

보리와 고구마가 쌀보다 더 많았던 저녁밥을

밥그릇도 없이 한 양푼 가득 담아 식구들은 정신없이

숟가락질을 하다가도 조금씩 바닥이 보일라치면

큰형부터 차례로 수저를 놓았고 한두 알 남은

고구마는 언제나 막내인 내 차지였다

-시집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작가)중에서

고구마가 없었으면 그해 겨울을 나지 못했을 어떤 산골 아이들이 떠오른다. 무성하던 줄거리 된내기 맞아 폭삭 사그라들면 가족들 몰려나와 고구마 캔다. 아랫목엔 이불 뒤집어쓴 담북장, 윗목엔 천장에 닿도록 둥글게 엮어놓은 고구마 통가리 틈에 끼어 식구들 나란히 자고 깬다. 구워먹고, 쪄먹고, 깎아먹고 겨우내 포동동 고구맛살이 올랐던 산골 개구쟁이들.

시인의 아버지는 과연 ‘언제나 저녁을 드시고’ 오셨을까?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식구들 밥상 올리고 부엌 궁뎅이에서 틀림없이 눌은밥 후루룩 털어넣고 계실 게다. 허기 달래며 수저 놓는 순서대로 철이 들곤 했던 형제들 모습 눈에 선하다.

이제 먹을거리 걱정 안 하게 되었다 말하지만 아직도 한쪽에선 굶는 아이들이 있단다. 다람쥐처럼 동면(冬眠)도 배우지 못한.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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