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46…잃어버린 계절(2)

  • 입력 2003년 10월 20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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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코는 잠옷 자락을 걷어 올리고 허벅지의 문신을 보여 주었다. 靖雄이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야스오씨가 라오스로 떠나기 전에, 일본어 읽고 쓸 줄 몰라도, 내 이름만은 한시도 떼놓지 말라면서, 여기에다 먹으로 이름을 쓰고 바늘로 찔러서, 피가 스며 나오니까 식초 바르고, 바늘로 찌른 구멍에 먹을 집어 넣었어. 아팠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뻤어, 내 몸에 자기 이름을 새기는 얼굴이 얼마나 진지하든지…하찮은 몸이지만 그래도 이 사람에게는 특별하구나 싶은 생각에…눈물이 나더라. 그 사람도 자기 몸에 내 이름 새겼어.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가르쳐준 거 처음이었어…여기, 심장 바로 위에…내 생명 바로 옆에 네 이름 놔두겠다면서…그런데, 그 사람, 총 맞아 죽었어. 그러니까, 내 이름도 그 사람 심장 위에서 죽은 거야.”

에미코는 찡그린 얼굴을 한층 더 찡그리면서 손을 설레설레 흔들었다.

“도망친다고? 도망쳐서, 어디로 가는데? 이름도 없는 사람이 돌아갈 데가 어디 있다고. 난 됐어. 덤이나 다름없는 목숨이니까, 그냥 여기서…미안하지만, 가기 전에 한 모금 피우게 해 줘…슬퍼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나미코는 담뱃대에 아편을 담아 불을 붙여 주었다. 후우 하고 아편을 들이마시자 에미코는 깊은 숲 속 찌르레기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

2년 동안이나 제대로 걷지 않았다. 다리 속에 뼈도 근육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앞으로 앞으로,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넘어져 헝겊 쪼가리처럼 땅에 널브러져도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 뛰고, 또 넘어지고, 넘어져도 마음만은 계속 앞으로 달렸다. 한 번 넘어지면 현기증과 더위에 방향감각이 무뎌져, 사방을 둘러보았다. 헉 헉 헉 헉, 낙원을 떠날 때는 떠나기가 겁났는데, 헉 헉, 지금은 낙원으로 돌아가게 될까봐 겁난다, 헉 헉 헉 헉,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은, 헉 헉, 생각할 수 없다. 나미코는 자기가 달려온 발자국을 돌아보면서, 발자국이 없는 방향으로 달렸다. 헉 헉,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헉 헉 헉 헉, 터지는 한이 있어도 달려야 한다, 헉 헉 헉 헉 헉.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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