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튀는' 장관

  • 입력 2003년 10월 1일 18시 15분


‘변화와 개혁은 다소 튄다는 말을 듣더라도 일상적 현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좌충우돌하는 창조적 노력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이 차관 시절에 펴낸 ‘공무원은 좀 튀면 안 되나요’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최 장관은 요즘 ‘다소 튄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좌충우돌하는 모양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태풍 속 뮤지컬 관람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사과한 지 하루 만에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위기에 처했는데 국무위원들이 몸으로 막아야 될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대통령이 뮤지컬을 보다가 어떤 위기를 맞았다는 것인지, 다른 장관들을 팔짱 끼고 쳐다만 보고 있다는 것인지,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최 장관은 중앙공무원교육원 특강에서 노 대통령의 행동을 변명해 주려다가 오히려 대통령의 잘못을 부각시키는 데 적합한 사례를 인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태풍이 다가오는 가운데 하와이에서 주지사와 함께 골프장에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에 착오가 있다. 1999년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뉴질랜드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끝난 뒤 허리케인이 미국 남동부 해안으로 다가오자 하와이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워싱턴에 귀환했다. 그리고 연방 재해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50만명의 주민을 대피시키는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최 장관은 “왜 우리는 태풍이 왔을 때 대통령이 ‘오페라’를 감상하면 안 되는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가”라고 말했다는데 구미 국가들 같았으면 더 호된 비판이 쏟아졌을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9년 3월 안보장관회의에서 유고 공습을 결정한 직후 골프를 쳤다가 신문 사설과 칼럼으로 얻어맞았다. 한국 언론만이 유별난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관람한 ‘인당수 사랑가’도 오페라가 아니라 뮤지컬이다. 최 장관은 ‘튀는 공무원’에 관해 나름대로 철학을 정립해 놓은 것 같다. 그러나 기초적인 사실 관계가 틀려 버리면 그만 ‘견분(犬糞) 철학’이 될 수 있다.

▷최 장관은 국무회의를 마치고 전남 목포에 내려가 해양대 학생 300여명을 대상으로 특별강연을 시작하면서 “기자들이 있으면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하니 학생 교육을 위해 나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고위 공직자인 장관이 대학생 앞에서 공개리에 하는 강의를 기자가 들어서 안 되는 이유가 무언가. 최 장관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튀는 것도 좋지만 튀는 것에도 적시성(適時性)과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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