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30…낙원에서(8)

  • 입력 2003년 10월 1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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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벽돌집은 피 칠이 됐어도 모르니까, 만지면 미끄덩거리고. 시체가 둥둥 떠 있는 강물로 밥을 지었더니, 밥이 시뻘겋더라고…그렇다고 뭐라고 군소리 할 수도 없어, 배는 고프지, 안 먹으면 몸이 남아나지 않으니.

다들 모닥불에 둘러앉아 먹고 있는데, 쓰카모토 중사가 벌떡 일어서면서 숲 속을 가리키더니, ‘기차다! 새빨간 불 뿜으며 달려온다! 저 기차 타고 나는 간다! 어이, 거기 서! 어이!’라고 밥알을 푸슬푸슬 흘리면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어. 그래서 사지를 붙잡고 모포를 둘둘 감아 어떻게든 재우려고 하는데, 두 눈을 번쩍 뜨고 한 숨도 안 자는 거야.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도 손가락 사이로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중얼중얼. ‘어이 가토, 귀신이다…저기, 저기 말이야…하나, 둘, 셋, 넷…다 세지도 못하겠군…파란 불이 흔들흔들 참 예쁘다…여우가 시집가나…’ 그렇게 날이 밝도록 중얼중얼거렸어….

다음날 아침, 중대장이 ‘정신차리게 해주겠다’면서 혁대 풀어서 몇 대나 날렸는데, 발꿈치를 반듯하게 모으고 차렷 자세로 경례를 하더니, ‘어젯밤 고향에서 축언을 드리고 왔습니다’라고 보고를 하는 거야. 할 수 없어서 마키 위생병이 군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여자처럼 꽃 이름도 잘 알고 마음도 고운 남자였으니 전투가 괴로웠겠지…불쌍하게도 말이야….

얘기가 길어져서 미안하군. 부대에서 하면 사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고, 고향에 돌아간다고 해도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 할 수 있겠어…나미코밖에 없어.”

나미코는 눈을 뜨고 가토 중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네.”

“총알 맞지 않게 나미코 아래털 하나 뽑아줄 수 있을까.”

나미코는 가토 중사의 부축으로 몸을 일으키자, 가위로 음모를 잘라 휴지에 싸서 건넸다.

“고마워. 이게 날 지켜줄 거야. 대신, 난 이걸 줄게.”

가토 중사는 자기 사진과 금실로 수를 놓은 아쓰다 신궁의 부적을 나미코 앞에 내놓았다.

“…서로 나라를 빼앗고 빼앗기고, 목숨도 빼앗고 빼앗기고…한 사람이라도 많이 죽여서 대일본제국을 승리로 이끌어야 동양에 평화가 오는 거야. 죽으면 안 되지, 살아서, 죽이고,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야지….”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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