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14…1944년 3월 3일(2)

  • 입력 2003년 9월 8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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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에 하나 고향에 돌아가

그대의 동생과 어머니

오늘의 격전 듣고는

기쁨의 눈물로 칭찬하리

아아 전우여 편히 잠들라

몸은 이곳에 묻혀도

일본 남아의 성심은

이야말로 피묻은 전투모

밀양 보통학교 학생들은 돌계단을 다 내려오자 노래를 멈추고 각자 집으로 달렸다. 남천교에 울리는 발소리에 놀란 도요새는 하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봄바람을 뒤쫓듯 용두목까지 날아갔다가, 파닥파닥파닥 날갯짓하며 다시 삼각주에 내려앉아 한 발로 물 속에 서서 부리를 내리고 있다.

아침 햇살은 마치 밤 따위 다 잊어버렸다는 듯 산과 강과 집과 거리 위에 깔려 있는데, 밀양강의 강물은 아직도 밤의 냉기를 품고 있었다. 미나리를 뜯는 아낙네들의 손바닥이 불긋불긋 감각이 없어질 무렵, 낚싯대와 망태를 든 남정네들이 둑에서 내려왔다. 남정네들도 바지저고리 차림이 아니라 허여스레한 셔츠에 검정색, 갈색 잠바를 입고 있었다. 다들 밀짚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 누가 어느 여자의 남편이고, 누가 어느 남자의 아내인지 당사자들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었다.

“오늘 아침에, 기생집 정희가 딸아를 낳았다 카던데. 연순 할매가 받았는데, 그래 이쁜 아는 처음 본다 카면서 한숨 쉬더라 그카더라. 알라가 피부는 새하얗고, 콧날은 오뚝하고 속눈썹이 얼매나 긴지 모르겠다 카면서.”

“아이고, 아배도 없는 때에.”

“우철이는 지금 어데 있는데? 정희는 있는 데 안다더나?”

“어데, 알 리가 있나. 우리 집에 물으러 왔을 정도니까네, 거 와 우리 삼촌이 지쿠후 탄광에서 일한다 아이가.”

“그라믄 일본에 있나.”

“밀항해서 시모노세키에 내렸는데 헌병한테 들키가지고, ‘누구냐, 서라’라고 하는데, 이우철이 어디 서겠나. 쏜살같이 내빼버렸제, 헌병도 쫓아 달려갔는데, 순식간에 없어져버렸다고 하더라. 헌병이 그랬다 안 하더나, ‘저게 새냐? 인간은 절대 아니다’고 말이다.”

“아이고, 벌써 백 번도 더 들었다.”

“누가 보고 하는 소리가?”

“누가 보기는 봤겠지, 온 밀양이 다 아는 소리니까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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