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문학을 생각하다'…40년 글쓰기의 황홀한 내공

  • 입력 2003년 9월 5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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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생각하다/정명환 지음/381쪽 1만5000원 문학과지성사

올여름에도 나는 어김없이 그를 찾아갔다. 파리 몽파르나스 묘원, 사르트르의 무덤. 그리고 보름 후 그가 보낸 싱싱한 꽃다발처럼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문학을 생각하다.’ 이 책을 만나고 나는 세상에 몇 안 되는 보배로운 꽃을 섬기듯 이틀 밤을 꼬박 함께 지새웠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영탄했다. ‘아, 행복하다!’ 고.

독자들이여, 객관과 이성의 힘을 글쓰기의 무기로 삼은 저자에게는 외람되게도 다소 감상적인 글로 시작하는 서평을 용서하시라. 그러나 이렇게밖에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시작할 수 없음 또한 너그러이 양해하시라. 왜냐하면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이와 같은 책을 기다려왔기에, 그리고 결과적으로 기다림의 보람을 만끽하였기에 자랑 섞인 응석을 어쩌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나의 응석이 조금이라도 못마땅한 사람은 우선, 제1부 ‘평론가는 이방인인가’를 읽어보시라. 그리고 이 책의 백미인 제3부 사르트르에 관한 세 편의 글을 읽어보시라. 그러면 당신도 나와 같이 그 자리에서 영탄하고 말리라. 행복하다, 에 그치지 않고 아름답다!, 고. 행복하다는 것은, 그와 그들에게 사르트르가 있었다면 나와 우리에게는 형안(炯眼)의 그가 있어서이고, 아름답다는 것은 사십년의 세월을 통과한 그의 글이 ‘바로, 지금’ 진주처럼 단단하게 빛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불문학계와 한국 문학의 비평계에서 정명환의 존재는 세 가지 점에서 독보적이다. 일본어가 아닌 불어로 불문학을 전공한 제1세대 불문학자라는 점과 전후(戰後) 지식인들을 전염시킨 치명적인 병과 같았던 실존주의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주인공이라는 점, 그리고 실존주의 문학의 일시적 소개에 그치지 않고(1998년 칠십세에 그가 완역해 내놓은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기억하는가) 그 자신 문학비평가로서 그것의 올바른 해석과 사용을 통찰하고 그것의 남발과 오용을 비판하며 한국 문학을 성찰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은 한국문학과 외국문학 연구를 병행해온 저자의 사십년에 걸친 문학적 궤적을 통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현재 우리 문학, 특히 비평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문제들을 고스란히 짚어 보여주고 있다는 데 더욱 큰 진정성을 발하고 있다.

함정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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