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지구 끝의 사람들' '파타고니아 특급열차'

  • 입력 2003년 8월 8일 18시 24분



◇지구 끝의 사람들/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7500원 160쪽 열린책들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7500원 222쪽 열린책들

칠레의 망명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1949∼ )는 두 개의 커다란 열정을 갖고 있다. 하나는 망명 작가답게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본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학적, 문화적,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는 그의 작품은 ‘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본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이국적이고 열대적인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와는 달리, 그의 작품은 그가 몸소 체험한 실제의 현실이고 동시에 우리 사회의 구성요소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세풀베다의 작품은 ‘현실의 마술’이라는 공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상상의 공간이나 인물을 창조하지 않고, 대신 실제 무대와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조국의 정치와 세계의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특히 환경 문제를 다루면서 그는 19세기 방식처럼 문명과 야만의 대립이 아니라, 야만적 문명과 문명화된 야만, 자연보호와 무책임한 자연말살의 대립을 통해 환경문학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번에 출간된 ‘지구 끝의 사람들’과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남쪽 끝 지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며, 세풀베다의 두 개의 열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지구 끝의 사람들’은 일본에 의해 남극 바다에서 자행되는 불법적인 고래 포획과 일본을 위해 봉사하는 타락한 칠레 정부, 그리고 이에 맞서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한 늙은이의 의연한 삶이 그려져 있다. 또한 여성 차별과 남극 원주민 말살, 칠레의 산림 파괴도 고발한다. 여기서 세풀베다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 즉 자연이 인간의 생존을 돕고,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자연을 존중하는 것을 배우도록 도와줄 수 있는 관계를 강조한다.

한편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는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행담이다. 그러나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기차다. 흔히 여행담이란 사실에 기초한 것이지만, 이 작품은 회상을 통한 불완전한 현실에 관한 것일 뿐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세풀베다에게 기억 속의 과거는 더 이상 현실이 아니다. 그런 현실은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이 작품은 지구 최남단이자 우리나라의 정반대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와 티에라 델 푸에고 지방의 경치와 그곳 사람들의 생활과 전설을 글로 담아낸다.

이 두 소설은 모두 세풀베다의 끝없는 여행의 산물이다. 그의 여행은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지, 목적지까지 최단 거리를 향해 달려가는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떠나는 것’이다. ‘파타고니아 특급열차’에서 할아버지가 책을 한권 주며 주인공 ‘나’에게 말하는 ‘마르토스’는 바로 과거가 아닌 현재의 ‘마음’을 찾아 계속 떠나는 여행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행을 통해 작가는 자기의 세상과 다른 세상도 자기의 세상임을 깨닫고, “세상은 하나이고 같은 모양이다”라는 서구중심주의적 사고를 비판하고 있다.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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