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진영/檢-警 수뇌부 ‘미묘한 회식’

  • 입력 2003년 7월 25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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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경찰 수뇌부가 24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중국식당에서 이례적인 회동을 가졌다.

포도주를 곁들여 저녁 식사를 하며 3시간 동안 이어진 이날 회동에 검찰측에서는 송광수(宋光洙) 총장을 비롯해 김종빈(金鍾彬) 대검 차장, 안대희(安大熙) 중수부장, 이기배(李棋培) 공안부장, 문영호(文永晧) 기획조정부장 등이 참석했다.

경찰측에서도 최기문(崔圻文) 청장과 임상호(林像鎬) 차장을 비롯해 김홍권(金洪權) 경무기획국장, 송인동(宋寅東) 정보국장, 김중겸(金重謙) 수사국장, 강대형(姜大亨) 보안국장 등이 동석했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 쪽에서 10일 전에 얼굴이나 보자며 먼저 제의가 왔고, 식사비도 검찰에서 냈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서로 고생하는 입장에서 덕담을 주고받으며 수사 공조를 다짐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양측 모두 ‘다른 의도나 배경이 있는 모임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격려와 공조를 위한 순수한 만남이었다는 양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날 모임은 미묘한 시기에 이뤄진 이례적인 회동이라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검찰이 수사 중인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사건에 경찰 간부가 연루됐다는 설이 나돌고, 창원지검이 현직 경찰관 수십명이 개입된 정황이 있는 법조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이 본격적인 경찰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4월에는 서울 용산경찰서가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들과 법조브로커의 통화기록을 조사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현 정권 출범 후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검경 갈등설’을 증폭시키고 있다.

검경 수뇌부의 만남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시기의 미묘함 때문에 이날의 회동을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양측 수뇌부의 조직 보호를 위한 ‘담합’으로 오해될 소지도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오해를 풀 수 있는 길은 법을 집행하는 두 기관이 엄정한 자세로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일련의 의혹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두 조직간의 공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미명 아래, 드러난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미봉한다면 조직 이기주의가 될 뿐이다.

국민은 검찰과 경찰 수뇌부의 이날 모임이 ‘잘못된 만남’이 아니었다는 걸 양측이 입증해 보이기를 기대한다.

황진영 사회1부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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