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제인에어…' 문학에 미쳐 사는 사람…사회…

  • 입력 2003년 7월 25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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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에어 납치사건/제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560쪽 1만2000원 북하우스

‘제인 에어’는 내게 특별한 고전이다. 고전문학은 재미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 ‘제인 에어’는 내게 다른 고전들을 새롭게 찾아 읽는 계기를 만들어 준 책이기도 하다. 이런 특별한 감정 때문에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책 속의 이야기는 그 이상이다. 근래에 들어 이만큼 독창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상상력을 발휘한 책은 보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책으론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가 있었고, 바이어트의 ‘소유’가 있었다. ‘제인에어 납치사건’은 꼭 이 둘을 합쳐놓은 것 같은 소설이다.

가까운 과거인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미래인 듯한 영국, 과거의 역사를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역사를 이야기하고 느닷없이 시간대를 넘나드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게다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고전과 그 작가들이라니. 그렇다. 이 책을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독창적으로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문학에 심취하다 못해 문학이 몸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작가나 등장인물의 이름을 따 제 이름으로 하고 셰익스피어를 낭송하는 자판기가 등장하는가 하면, ‘문학범죄’(초판본 암거래와 해적판 발행 같은)가 횡행하여 ‘리테라텍’이라는 문학조사반이 따로 있을 정도.

매력적인 여주인공 서즈데이 넥스트(Thursday Next·이름조차 매력적인)는 이 리테라텍의 조사원이다. 초반부의 혼란스러움은 처음 두 장을 넘기면서 등 뒤로 사라진다. 서즈데이 넥스트의 뒤를 따라 책과 범인을 쫓는 순간엔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책에 몰두하여 넥스트, 넥스트(다음은, 그 다음은 어떻게 됐는데?)를 외쳤다.

‘문학’이라는 장치를 절묘하게 사용하는 제스퍼 포드의 솜씨 또한 기막히다. 바이어트는 ‘소유’에서 그것을 아주 진지하게 사용했지만, 포드는 반대로 가볍게 다루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재치와 위트로 읽는 내내 즐거움을 선사한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베이컨주의자와의 논쟁, 고전을 살짝 틀었다가 다시 꿰맞추는 과정이라든지, 홈스의 형 마이크로프트와 DNA에 정보를 새겨 넣은 하이퍼책벌레(이게 압권이다!)까지 등장시키는 등 어쩌면 곳곳에 이런 장치를 마련했을까 하는 감탄의 연발뿐이다. 그리고 분명 번역자를 괴롭혔을 언어유희까지.

당신이 ‘제인 에어’를 좋아하거나 문학에 빠져 있다면, 또는 SF를 좋아한다거나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다면, 또는 액션 영화나 스릴러만 찾아본다고 하더라도,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라도 속한다면 이 책을 읽는 일이 너무너무 즐거울 수밖에 없다. 특히나 당신이 책을 좋아하고 ‘책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껴 보았다면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행복이 가득 찰 것이다. 이 모두를 좋아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해 보라. 그에게 귀빈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많은 것들을 담고 있으면서도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재능은 매우 뛰어나다. 이것이 그의 처녀작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범한 면모를 보여 주는 이 책의 후속작이 어서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지호 전 인터넷서점 ‘알라딘’ 편집장·출판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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