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김창원/'베란다 단속' 엄포로 들리는 까닭

  • 입력 2003년 7월 24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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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베란다를 확장해 거실이나 방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 증축(增築)입니다. 앞으로 가능한 모든 행정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단속할 방침입니다”

최근 건설교통부가 법 테두리를 벗어난 발코니 확장 아파트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하겠다고 밝혔다. 건교부 당국자는 “이번 단속은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는 물론 기존 아파트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이라며 ‘일회성 엄포’가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건교부는 각 자치단체 해당 공무원이 단속을 소홀히 할 경우 감사원에 감사도 요청할 계획이다.

발코니 확장은 애초부터 불법이었던 만큼 단속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발코니 확장이 심각한 안전사고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건교부의 주장대로라면 지금까지 느슨하게 대처해온 행정 당국은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건교부의 이번 발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주택업계에 따르면 해마다 35만 가구가 불법 증축을 했고 아파트 10가구 중 3가구는 단속 대상이라고 한다.

단속에 걸리면 수백만원을 들여 개조한 아파트를 원래대로 고쳐야 한다. 이를 거부하면 징역 1년 이하 또는 1000만원 이하의 중형(重刑)을 받는다. 수백만 명이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가야 하는데도 당사자들은 태평하다.

이유는 간단한다. 수백만 가구에 이르는 아파트 단속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 때문이다.

정작 단속에 나서야 할 서울시나 일선 자치구 공무원들의 반응은 더 회의적이다.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은 “수만 가구에 이르는 아파트 단지를 2, 3명의 계원으로 어떻게 단속을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푸념한다. 다른 구청 관계자는 “이미 유명무실해진 불법 증축 법조항을 왜 다시 꺼내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뒷북 행정’을 꼬집었다.

일선 공무원들조차 실효성을 믿지 못하는 행정이라면 일반 국민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건교부는 ‘단속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건교부가 말하는 ‘국민의 준법의식 결여’를 감쌀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현행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함께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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