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사랑과 지혜

  • 입력 2003년 7월 23일 18시 57분


코멘트
“자유와 연방, 지금 그리고 영원히, 하나이며 분리할 수 없다!” 샴쌍둥이라는 말을 처음 탄생시킨 태국 태생의 창과 엥 벙커 형제에게는 이 같은 정치적 구호가 붙어 다녔다. 샴쌍둥이의 샴이란 태국의 옛 이름인 시암에서 나온 것. 1811년 가슴이 붙은 채로 태어난 쌍둥이 형제를 아벨 코핀이라는 미군 장성이 시암 국왕의 허가를 받아 미국으로 데려가 ‘샴쌍둥이’라고 소개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창과 엥 형제가 서커스 공연을 하며 인기를 모은 때 는 미국 남북전쟁 이전 남부 연합이 미합중국에서 분리를 하느냐 마느냐로 소란스럽던 시기였다. 북부 출신 상원의원 대니얼 웹스터는 이들 샴쌍둥이를 자유와 연방의 상징으로 들면서 북부와 남부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연설해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마치 한 사람처럼 창-엥으로 불린 이들 형제는 서른두살 때 두 자매와 각각 결혼해 모두 21명의 아이를 낳았다. 샴쌍둥이가 비정상인이 아니라 직업을 갖고 결혼도 하면서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그러나 영원히 함께 살기를 바란 건 아닌 듯하다. 가는 데마다 자청 타청으로 의학적 관심의 대상이 됐다. 다만 위험부담이 너무 커서 분리수술을 못했을 뿐.

▷샴쌍둥이가 생기는 원인은 분명치 않다. 정자와 난자가 만난 지 2주일쯤 된 수정란이 쌍둥이가 되려고 2개로 분리되다가 무슨 연유인지 분리가 멈추는 바람에 신체가 붙어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생 빈도는 5만∼10만명 중 1명이지만 실제 생존 빈도는 20만명당 1명 정도다. 며칠 전엔 29년간 간절히 독립된 삶을 바랐던 이란의 샴쌍둥이 비자니 자매가 수술 후 숨져 이란을 눈물로 적시기도 했다. 63세까지 붙어서 살면서 마크 트웨인의 소설로, 시로, 다큐멘터리로 수없이 등장한 창-엥 형제는 그래도 행복한 샴쌍둥이인 셈이다.

▷이보다 더 행복한 샴쌍둥이가 있다. 엊그제 분리수술에 성공한 민사랑과 지혜 자매다. 올해 3월 4일 1초차로 태어난 사랑과 지혜는 엉덩이 부분이 붙은, 말 그대로 사랑과 지혜의 한 몸이었다. 아기들 엄마는 인터넷에 개설된 카페를 통해 “불행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무지 행복하다”고 했다. 팔다리가 짧고 길고가 문제가 아니라 똑바른 마음가짐과 올바른 미래 판단, 자기관리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제 싱가포르에서 무사히 수술을 마침으로써 사랑과 지혜는 서로 마주볼 수 있게 됐다. 새롭게 태어난 사랑과 지혜가 우리 국민의 사랑과 지혜의 상징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