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정보 숨긴 채 시장에 맡긴다고?

  • 입력 2003년 5월 29일 19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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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회사별 연체율은 어느 정도입니까?”(기자)

“회사별로 연체율을 공개하면 괜히 시장 혼란만 초래합니다.”(금융감독원 담당 국장)

카드사 영업실적을 알려달라는 요청에 마지못해 최근 기자실을 찾은 금감원의 담당 국장은 이같이 말했다.

동석한 금감원 직원들은 카드사별 연체율은 끝내 밝히지 않은 채 “철저히 감독해 부실요인을 없애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카드사의 경영부실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카드사들의 정확한 경영상태를 몹시 궁금해 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위원회와 금감원 등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입을 맞춘 듯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카드사의 부실채권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금감원의 담당 임원과 팀장에게 물었더니 “모른다” “자료 집계가 덜 됐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금감원이 운영하는 전자공시시스템에는 부실채권 규모가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공개돼 있는 정보조차 모른다고 답하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국민의 알 권리’를 설득하는 것은 애당초 무망(無望)한 일인지 모른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런 정부의 태도에 “앞뒤가 안 맞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4월초 카드사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경영이 부실한 카드사들의 퇴출여부는 (금융)시장에서 알아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카드사 중에는 경영이 부실한 카드사와 그렇지 않은 카드사가 섞여 있으니 시장이 퇴출여부를 결정하라는 주문이었다. 당연히 부실 내용에 대한 정부의 정보 제공이 전제가 된 약속이었다. 시장기능이 작동하려면 필요한 곳에 정보가 물 흐르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은 “정부가 필요한 정보를 잔뜩 움켜쥐고 있어 (우량카드사 선별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은행, 보험, 증권사에 압력을 넣으면서 카드사의 부실을 떠넘겼던 정부에 대한 불신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카드사 문제에 관한 한 오불관언(吾不關焉·나는 관여하지 않겠다)식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접하면 더욱 기가 막힌다.

7월 금융대란설에 카드사 부도설 등등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시장 투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커녕 아직도 구태의연한 밀실행태와 권위의식에 빠져있어 안타깝다.

김동원 경제부 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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