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허정/사스, 지나친 두려움이 더 큰 病

  • 입력 2003년 5월 5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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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병의 발생과정과 전파경로에는 아직도 의문점이 많다. 직접 접촉이나 체액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거리에서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만 잘 닦아도 예방할 수 있다고 개인위생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전염병은 언제나 역사를 좌우하는 요인이었다. 위대한 왕이나 정치가의 활약보다도 흉년이나 전염병이 역사 변천에 더 큰 변수로 작용해 왔다. 삼국시대에서 조선조로 이어지는 역성(易姓)혁명의 이면에도 기근이나 전염병 같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전염병의 유행을 일종의 재난으로 치부해 위정자의 허물을 물어 정권교체가 이뤄진 적도 많았다.

1818년에서 1819년에 걸쳐 인도대륙을 휩쓴 콜레라는 1820년에는 중국에서 위세를 떨치고 1821년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많은 희생자를 냈다. 순조실록에는 서울 장안에 시체가 널리고 냄새가 심해 조정이 나서 매장하는 데 힘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런 전염병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질병사가(疾病史家)들은 인간이 동물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 점에 혐의를 두고 있다. 원시수렵시대에는 먹이를 사냥할 뿐 다른 동물과의 접촉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농사를 짓고 동물을 가축으로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질병이 사람에게 옮아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미 정복됐거나 관리 가능하게 된 대부분의 전염병은 동물에서 옮아온 인수(人獸) 공통의 전염병이다. 천연두, 홍역, 소아마비도 원래 동물의 질병이었다.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도 사람에게는 드문 병이었다. 이 중에서도 일반 현미경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여과성(濾過性) 병원체인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아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20세기에도 아프리카의 에볼라 병을 위시해 에이즈와 인플루엔자 등이 기습적으로 퍼졌다. 사스도 그중의 하나다.

이 병은 1918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100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냈던 스페인독감에 비하면 독성이 낮다. 그러나 이제는 독감이나 사스 때문에 생겨나는 폐렴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과 지식이 있다. 단지 전염경로나 전파과정이 명확치 않을 뿐이다.

사스와 관련해 몇 가지 유의사항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사스는 치사율도 높지 않고 과거의 인플루엔자 같이 전염속도도 빠르지 않다. 다만 이 병의 진원지인 중국이 발표를 늦추고 축소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모든 정보를 공개해 이 병에 대한 의구심을 없애야 한다.

둘째, 일반 국민도 사스 공포증에 빠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역시 바이러스로 전염되는 결핵과 비교해보면 된다.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면 보건당국에 알려 제대로 치료받으면 된다.

셋째, 긴 안목에서 전염병 관리체계는 물론 보건의료정책을 세워야 한다. 근래 우리나라는 현실에 맞지 않는 의약분업이나 건강보험통합에 매달려 의료 인력이나 시설에 관련된 장기적 보건기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사람들의 활동범위가 넓어질수록 동물을 통해 사람에게 전파되는 질병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번 일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전염병 전문병원을 만드는 한편 장기보건 기획도 제대로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허정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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