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오명철/착잡한 '신문의 날'

  • 입력 2003년 4월 7일 18시 31분


7일은 신문사 입사 후 20번째 맞는 신문의 날이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우울한 내 직업의 생일이었다. 대학 졸업 후 2년에 걸쳐 15전16기 끝에 수백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직장이지만 기자가 공무원한테 술이나 얻어먹으며 헛소리나 하고 쓰레기통이나 뒤지며 다니면서 오보나 하는 직업으로 비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신문부터 찾는 아버지를 마치 독립군처럼 대해온 아내와 아이들 보기도 민망하다. ‘내가 고작 이런 수준의 정부와 대통령을 맞기 위해 지난 20년간 그 고생을 했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유감스럽게도 유력 신문에 대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거듭되는 적대적 발언과 이창동(李滄東) 문화부장관의 ‘신보도지침’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 신문사 부장급기자는 ‘신보도지침’이 발표된 이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문화부 공무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5년 동안 전화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으로 인해 그 공무원이 피해를 보거나 맘고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중앙부처 출입기자들은 최근 주머닛돈을 모아 공보관에게 술을 사주며 “우리가 언제 공무원들에게 술 사달라고 했느냐”고 자탄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대통령이 싫어하는 신문사 기자들과 가깝다는 얘기가 들리면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조심하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우려하던 언론학자들도 정부의 강도가 높아지자 “미안하다. 더 이상 코멘트하지 않겠다”며 언급을 회피하고 있고, 전문직 종사자들은 “세무조사 당하는 것 아니냐”며 언론과의 접촉을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대통령이 되기 전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말했지만 집권 후에는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예 ‘방송과 인터넷 매체만 있는 정부’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에 이회창(李會昌)씨가 집권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이 같은 통제 조치를 취했다면 우리 방송과 인터넷 매체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완전한 정부, 깨끗한 권력은 없다. 그렇기에 정부 권력을 감시 고발해야 하는 신문도 눈을 감고 잠들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는 원로 언론학 교수의 말씀을 되새기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오명철 문화부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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