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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4월 1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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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파병동의안에 찬성과 반대 중 어느 쪽에 표를 던질지는 ‘정답이 아니면 오답’인 수학문제와는 성격이 다를 것이다. 일본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전후해 비슷한 몸살을 앓았다.
일본 정부는 일찌감치 미국 편에 섰다. 인도양의 미군 항공모함에 급유 지원을 해 줬고, 이지스함을 인근 해역에 파견했다. 전쟁이 난 뒤에는 난민 구호를 위해 자위대 수송기를 보내겠다고 나섰다. 여론과 야당의 반발은 거셌다. 칼럼에서는 “일본은 언제까지 국제 여론을 무시할 것인가”, “미국을 짝사랑하는 일본 외교가 부끄럽다”는 자성론이 끊이지 않았다. 의회에서 ‘외교철학 부재’를 비판하는 야당 당수들의 추궁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늘 수세였다.
일반 국민의 여론도 반전론이 우세하다. 지난달 말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서는 전쟁 반대가 65%로 전쟁 개시 직후(59%)보다 높아졌다. 고이즈미 총리가 미국 지지를 밝힌 데 대해서도 53%가 반대해 찬성(36%)을 크게 앞질렀다. 한국 정도는 아니지만 도쿄 시내에서 열리는 반전 집회의 열기는 뜨겁다.
출범 직후 80%를 웃돌던 내각 지지율이 40%대 초반까지 떨어진 데에는 경제개혁의 부진 못지않게 이라크전 지지가 반전 여론을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집권 자민당의 촉망받는 소장파인 야마모토 이치다(山本一太) 참의원 의원은 “한반도 전쟁은 일본에도 ‘재앙’”이라며 “고이즈미의 속내는 동북아 안정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정상간의 만남에서도 인간관계는 존재한다. 지금 곤경에 처해 있는 조지 W 부시에게 고이즈미는 소중한 선물을 줬다. 나중에 부시가 북한을 공격하려 할 때 고이즈미는 ‘이봐, 부시 친구. 내 얼굴 봐서 참아달라’며 만류할 카드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물론 일본 정부가 미국을 적극 지지하는 것은 이번 기회에 자위대의 활동영역을 넓히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인류평화라는 명분보다는 눈앞의 실리만을 챙기려는 ‘소국(小國)적 행태’로 비판받을 여지도 충분하다.
분명한 것은 일본 정부의 결정이 철저하게 국익을 우선시하는 관점에서 요모조모 재어보고, 따져본 뒤 결정됐다는 점이다.
파병이 옳으냐 그르냐는 참으로 판단하기 힘든 문제다. 책임을 지지 않는 위치에 있다면 좀 더 자유롭게 소신을 피력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결정 권한이 있는 위정자(爲政者)라면 고이즈미 총리가 ‘여론을 등지는 선택’을 한 이유를 눈여겨봐야 하지 않을까.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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