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병렬/파병, 盧대통령이 나서라

  • 입력 2003년 3월 27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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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에 대처하는 노무현 정부의 행보가 보여주고 있는 난조(亂調)는 의도적인 것인가, 아니면 국정장악 능력의 결여를 보여주는 것인가. 노무현 정부가 조기에 미국의 이라크전쟁 수행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정부 차원에서 파병을 결정, 이에 대한 동의를 국회에 요청한 데는 약간의 의외성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노무현 정부의 진의와 의도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전쟁지역에 군 최고통수권자가 병력을 보내는 것은 바로 사지(死地)에 자신의 부하를 보내는 일이다. 공병이든 의무병이든 총을 들고 무장하고 가는 것이고 전투 지역인 한 희생이 뒤따를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지에 부대의 파병을 결정하는 일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당위와 불가피한 필요성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정부의 자세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명분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파병하는 것이 국익이나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보탬이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파병을 국회가 결정해 주었으면 좋겠고, 파병을 반대하는 논리도 의미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렇게 되자 그동안 파병을 반대해 오던 각종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파병 결사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심지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마저 파병을 사실상 반대하는 공식의견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가 하면 어느 공중파 TV는 ‘반전 반미’를 부각시키는 프로그램을 연일 방송하고 있고,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의 당선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던 많은 비정부기구(NGO)들은 ‘반전’을 명분으로 ‘반미’ 활동을 공공연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노 대통령 자신은 파병동의안을 국회로 던져놓은 채 사실상 방관자의 입장에 서 있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 노 대통령은 이 같은 행동으로 미국에 대해서는 “내가 할 일은 했다”는 생색을 내는 한편, 일부 여론에 등이 떠밀린 국회로 하여금 파병동의안을 부결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국회에서 찬반 격론 끝에 자유표결을 통해 가결시키게 함으로써 뒷날 찬성표를 던진 여야 의원들에 대한 여론의 ‘인민재판’의 길을 닦아 놓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자아내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은 국군의 이라크전쟁 파병 명분에 관해 노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내세우고 있는 ‘군색한 설명’에 의해 증폭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정부의 파병결정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국가의 실리를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마지못해 하는 일이니 양해해 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군색한 설명을 받아들일 어수룩한 국민이 있을 리 없다.

이라크전쟁의 대의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다. 우선 분명한 진실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이라크 국민을 철권으로 억압하는 독재자일 뿐만 아니라 대량살상 무기 개발을 통해 지역과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번 미영 양국의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프랑스와 독일은 물론 심지어 러시아와 중국까지도 이 같은 진실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다. 다만 이들 나라는 미영 양국이 1441호에 추가하는 새로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없이 독자적으로 전쟁을 개시한 데 대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국군의 이라크전쟁 파병 명분을 재정립해야 한다. 후세인 대통령과 그의 독재정권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파병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립해야 한다. 혹시라도 이 정부의 속셈이 미국에게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지원을 제공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라크전쟁 종결 후 북한 핵문제를 다루게 되는 차례가 왔을 때 미국의 대북정책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겠다는 ‘전략적 계산’을 하는 데 있다면, 그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오산’이 될 것이다.

최병렬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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