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현인택/인계철선 후퇴論 누가 불렀나

  • 입력 2003년 3월 20일 19시 00분


세계의 이목이 온통 미국의 대 이라크전에 쏠려 있는 이때 워싱턴으로부터 한미관계에 대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우려할 만한 소리가 들린다. 미 국방부의 고위관리가 유사시 주한미군이 자동 개입하게 되어 있는 ‘인계철선(tripwire)’ 개념은 부적절하며 미 2사단도 한강 이남으로 옮기기를 원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 관리의 위치로 볼 때 이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전반적인 견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개념은 지난 50년 동안 한미동맹의 근간이 되어왔다. 이처럼 중요한 문제가 한미간의 심도 있는 논의와 합의 없이 기정사실화 돼 실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흔들리는 韓美동맹의 근간 ▼

사실상 주한미군문제를 포함한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서는 앞으로 양국이 긴밀한 논의를 하기로 한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앞질러 얘기가 나오게 된 데는 지난 몇 달 동안 한미 사이에 표면화된 불협화음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한 이후 대북정책을 놓고 한미간에 커다란 견해차가 존재해 왔다. 더욱이 북한 핵문제가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사태에 대한 원인이 마치 북-미간 직접대화를 거부하는 미국에 있고, 또 미국이 이미 전쟁시나리오를 갖고 북한 핵문제를 다루려 한다는 비난이 한국측으로부터 나왔다. 거기에다 우리 정부는 한미동맹 재조정의 필요성을 미국에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내 점증하는 반미감정도 미국으로서는 심각하다고 느꼈을 법하다. 서울시청 앞의 대규모 반미시위에서 대형 미국 성조기가 갈기갈기 찢기며 불태워지는 장면이 미국의 주요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것을 보면서 미국 국민은 한국이 어려울 때 같이 갈 수 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미국에서 볼 때 한국은 정부나 국민차원에서 한미동맹 관계의 재조정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미 고위관리의 이번 발언은 이러한 사태진전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다. 지금 워싱턴의 분위기로 볼 때 그것이 한국의 여론을 떠보기 위한 단순한 제스처는 아니라고 보아진다.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이 자국의 안보와 세계안보를 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동맹의 가치도 얼마든지 재평가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주한미군 문제가 인계철선의 철회로까지 진전되게 된 상황의 단초는 우리가 제공한 측면이 분명 있다. 그렇더라도 문제가 이런 식으로 결말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첫째,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한미간의 심도 있는 논의와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 이러한 방식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을 심각히 훼손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둘째, 한미동맹의 전제가 되는 북한 문제의 본질이 그대로 남아 있다. 더욱이 지금은 북한 핵 위기의 와중이다. 셋째, 인계철선의 철회와 미 2사단의 한강이남 재배치는 한미동맹의 근간과 연계되어 있는 문제다. 한미동맹의 비전, 구조, 역할, 전략 등이 동시에 다 바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안보전략, 군 구조 및 전력을 변화시켜야 하고 막대한 안보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한국경제에 빨간 불이 켜질 것도 자명한 이치다. 미국으로서도 한미동맹의 훼손은 큰 손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으로서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안보비용 경제 악영향 우려 ▼

그러나 이제 공은 한국으로 넘어왔다. 이는 정책실무자들 선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동맹사이의 신뢰이며, 대미관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철학과 연관된 문제다. 따라서 대통령의 명확한 인식과 확고한 태도표명이 중요하다. 우리는 주한미군을 원하고 필요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지금은 인계철선의 개념 철회 등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이전에 이 문제를 한미간에 깔끔히 마무리하고, 그런 바탕 위에서 워싱턴을 방문해야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할 수 있다.

현인택 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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