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287번째 완주' 손기정 영웅에 바칩니다.

  • 입력 2003년 3월 16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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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손기정옹을 추모하기 위해 16일 동아마라톤에 참가한 일본인 야마다 게이조(왼쪽)와 부인 후지코 여사는 비가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찬 레이스를 펼쳤다. -특별취재반
고 손기정옹을 추모하기 위해 16일 동아마라톤에 참가한 일본인 야마다 게이조(왼쪽)와 부인 후지코 여사는 비가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찬 레이스를 펼쳤다. -특별취재반
“들어온다! 들어온다…, 손기정이 이겼다!”

베를린올림픽이 열린 1936년 여름 일본 아키다(秋田)현의 마을회관은 연일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장면이 담긴 기록영화가 매일 상영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학교 5학년이던 야마다 게이조(山田敬藏·79)도 맨 앞자리에서 손 선수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에 땀을 쥐었다.

“나도 손 선수처럼 될 거야.”

야마다씨에게 손기정은 영웅이었다. 17년 뒤인 1953년, 그는 마침내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1인자의 꿈을 이뤘다.

야마다씨는 지난해 타계한 ‘손기정 선배’를 추모하기 위해 이번 동아마라톤에 참가해 3시간43분17초를 기록했다. 그는 “(손 선배와) 함께 레이스를 펼쳤으면 더 좋은 기록이 나왔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야마다씨는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 한국팀 코치로 참가한 손옹을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마라톤에 대한 ‘열정’으로 국경을 뛰어넘은 우정을 나눠왔다.

야마다씨는 손옹의 권유로 1968년 처음 동아마라톤에 참가했고,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에서는 일본 마라톤선수들의 도우미로 활동했다. 손옹이 일본을 방문할 때면 늘 도쿄 번화가로 모시고 가 청주를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1992년에는 손옹을 일본으로 초청해 성대한 팔순잔치를 열어주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에 거주하는 손씨의 장남 정인(正寅·59)씨 내외와는 가족처럼 지낸다.

야마다씨에게 이번 동아마라톤은 287번째 완주다. 운동선수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다시 정년퇴직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라톤은 언제나 그의 생활이었다.

“5∼20㎞ 단축마라톤까지 합치면 (참가한 대회가) 다 세기 어려워요. 달리는 순간만큼은 내가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인생을 누리며 사는 것 같아 좋아요.”

인생의 반려자인 부인 후지코(富士子·69) 여사도 야마다씨의 ‘길동무’다. 부인은 해마다 야마다씨와 함께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뉴욕과 런던 보스턴 애틀랜타 호놀룰루 기후(일본) 등을 찾아 완주에 도전했다.

45세부터 마라톤을 시작한 후지코 여사는 이번 대회를 포함해 101번째 풀코스를 완주했다. 이번 대회 기록은 4시간31분14초.

“갱년기가 부담스러워 처음엔 ‘그냥 걸어보자’는 생각이었죠. 솔직히 만날 뛰는 사람(남편)을 혼자 쳐다보고 있기도 지겨웠고(웃음)….” 후지코씨는 마라톤 덕분에 지난 23년간 이렇다 할 잔병치레 한 번 없었다며 만족해했다.

17일 야마다씨는 부인과 함께 손옹이 잠들어 있는 대전국립묘지와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회관의 손기정기념관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가 미리 만들어 가져온 추모패에는 “손기정 선배를 떠올리며 동아마라톤 레이스에 임했습니다”라고 씌어있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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