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文실장 의원직 사퇴 미룰 일 아니다

  • 입력 2003년 3월 4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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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의 의원직 사퇴서 처리가 뒤로 미뤄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여론의 시선은 탐탁지 않다. 이달 안에 처리하면 보궐선거를 치르게 되고 이 경우 새 정부 출범 후 첫 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결코 떳떳한 일이 아니다.

물론 대통령비서실장의 의원 겸직을 금지하는 법규정은 없다. 하지만 의원직을 가진 인사가 비서실장에 임명되면 즉시 사퇴하는 것이 우리 정치의 오랜 관례다. 국회와 청와대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이유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 박관용 한광옥씨 등이 임명되자마자 곧바로 의원직을 사퇴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이 같은 당연한 일을 비켜가려는 여권과 문 실장의 태도는 옳지 않다. 문 실장이 의원직 사퇴서를 민주당에 내고 그 처리를 맡긴 것은 당장 사퇴를 피해보려는 정치적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내야 할 곳은 국회이지 정당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새 정부 인사들은 그동안 줄곧 정정당당한 사회의 건설을 강조해 왔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보선을 피하기 위해 의원직 사퇴서 처리를 늦추는 것이 과연 정정당당한 일인가. 또 하나의 반칙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집권측부터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비서실장부터 이와 거리가 있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그런 자세로 어떻게 남에게 기득권에 매달리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보선 실시시한을 넘길 때까지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야당 의석이 늘어날 가능성마저 봉쇄하려는 것은 결국 기득권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새 집권세력이 그토록 외쳐온 정치의 환골탈태인지 묻고 싶다. 문 실장의 의원직 사퇴서는 즉각 처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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