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받는 韓美동맹]<1>盧정부를 보는 美의 시각

  • 입력 2003년 3월 2일 18시 56분


코멘트
《최근 한미관계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문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새로 출범한 한국의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기존의 한미동맹관계를 재정립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한미공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북핵 위기에 따른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커다란 전환기를 맞은 한미관계의 현실을 진단하고 앞으로 양국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제안하는 시리즈를 5회에 걸쳐 게재한다. 》

‘불안과 우려.’ ‘불확실성과 관망.’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각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된다.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시절 대북정책을 놓고 겉돌았던 한미관계가 다시 든든한 상호협력 관계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없다. 그보다는 한미관계가 더욱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부시 행정부는 물론이고 의회와 싱크 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한국인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노 대통령이 한국 대선에서 반미감정에 편승해 승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솔직히 말해 ‘반미’를 주장하는 일부 한국인들에 대해, 그리고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이견을 보이며 전통적 한미동맹에 변화를 모색하는 노무현 정부에 호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평소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비판해 왔던 한 한반도 전문가는 1일 ‘예민한 시기’인 만큼 자신의 말을 익명으로 처리해 달라며 속마음을 토로한 뒤 “만일 노 대통령이 북한을 미국보다 중시하고, 미국에 대등한 관계를 요구한다면 결국 부시 행정부와 외교적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 대통령이 취임에 앞서 지난달 초 워싱턴에 보낸 대표단과 접촉했던 다른 한반도 전문가는 “한국은 대북 제재만 반대할 뿐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의 반미감정 확산에 대한 미국인들의 거부감은 크다. TV 보도를 통해 서울에서 일부 한국인들이 성조기를 불태우며 ‘양키 고 홈’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을 지켜본 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미 평화연구소(USIP)의 빌 드레넌 부국장은 “한국인들은 미군의 과실에 의한 여중생 치사 사건 때 격렬한 반미시위를 벌였지만 북한의 도발로 남한 해군이 여러 명 사망한 서해교전 때는 북한 국기를 태우는 반북 항의시위가 없었다”며 “일부 한국인들이 미국의 잘못만 부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물론 미국이 최근의 한국 내 기류에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1월30일부터 지난달 1일까지 워싱턴의 조지타운대에선 한국의 반미감정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대책을 모색하는 비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이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1905년 미국이 ‘태프트-가쓰라 협약’으로 일본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한 이후 최근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 사건에 이르기까지 1세기에 걸쳐 한국에서 반미를 촉발했을 만한 역사적 요인들을 고찰한 뒤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우선 미국은 특히 한국 젊은 세대의 주장을 경청하고 일방주의를 지양하면서 △솔직한 정책 협의 △과거 사례 연구를 통한 미래의 정책 실수 예방 △한국인에 대한 비자면제 검토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와 함께 한국은 햇볕정책이 지나치게 낭만적인 것은 아닌지를 검토하고, 한국 언론도 한미관계에 관해 정확한 보도를 해야 한다는 권고가 들어 있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전문가는 “과연 한국에서도 한미관계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노무현 정부의 올바른 현실인식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美한반도 정책 누가 움직이나▼

미국 행정부의 대(對)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은 의회와 싱크 탱크, 대학, 언론 등에 고루 포진해 있다.

상원에서는 리처드 루가 외교위원장이 현실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크다. 척 헤이글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과 칼 레빈 군사위원장도 빼놓을 수 없다. 루가 위원장은 공화당 소속이지만 합리적 중도론자로 북한과의 대화 및 제네바 합의 준수를 지지한다. 민주당에서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패배를 아쉬워하면서도 루가 위원장이 외교위를 맡게 된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평했을 정도.

하원에서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법사위원장을 지낸 헨리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과 짐 리치 동아태 소위원장 등이 주요 인물. 하이드 위원장 등은 보수적인 대북관을 갖고 있다.

싱크 탱크 가운데는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 재단과 미국기업 연구소(AEI) 등이 민주당과 가까운 브루킹스 연구소 등보다는 부시 행정부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영향력을 갖는다는 평. 최근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활동이 활발하다.

또 외교협회(CFR) 산하 한반도 태스크 포스의 보고서도 크게 주목받는다. 대학에서는 로버트 스칼라피노 버클리대 명예교수와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교수 등이 원로급 한반도 전문가.

언론계에선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CNN방송이 북한 관련 보도를 많이 하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들보다는 보수적인 월 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타임스, 폭스TV의 보도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인 가운데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와 CNN방송의 로버트 노박 등은 보수적이다. 전직 언론인인 돈 오버도퍼는 중도적, 셀리그 해리슨은 진보적 대북관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