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36회…강의왕자(12)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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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가 또 잠이 들었네. 봐라, 좀 더 먹어라, 눈 뜨고”

인혜가 아기의 볼을 살짝 건드려보았지만, 아기는 젖꼭지에서 입을 떼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인혜는 아기의 조그만 턱을 어깨에 올리고 등을 쓸어내려 트림을 시켰다.

“…아버지 첩을 집안에 들여놓을 수는 없제. 하지만 동생은 그래 해도 안 되겠나, 어머니 몰래…”

건너방의 문이 열려 우철이 하던 말을 멈췄다.

희향은 우철 부부는 쳐다보지도 않고 남편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눈 먼 사람이 사물의 형태를 확인하듯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남편의 얼굴을 더듬기 시작했다.

손이다…손이 내 광대뼈 위를 왔다 갔다 왔다 갔다…따뜻하다…누구 손일까?…숨이 갑갑하다 숨이 갑갑하다…바닷물을 마셨다…나는 제주도 함덕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파도가 나를 향해 철썩 철썩…또 밀려왔다…살며시 꿈틀거리며…나를 덮치려고…부서지기 전에 파도를 타야할 텐데……아이고 손도 발도 움직이지 않는다…앗! 또 왔다 이번에는 아주 큰데!…철썩 철썩 쏴…여보…누가 부르고 있다…여보…희향의 목소리다…여보!

용하는 눈을 뜨고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장남의 얼굴과 며느리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며느리가 안고 있는 손녀딸의 얼굴도 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천천히 눈에 담고, 그리고 다시 아내의 얼굴로 돌아갔다. 올 5월이면 아마도 서른 여덟일 것이다…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운 볼…눈이 부시다!…이 빛은 무엇이냐…누군가 거울로 빛을 반사시키고 있다…희향의 얼굴이 점점 멀어진다…눈길을 떼지 말자…눈길을 떼면 사라져버린다…만지고 싶다…아내의 얼굴을…팔이 올라가지 않는다…내 팔은 납처럼 굳었는가…어떻게든 만져보고 싶다…무겁다…올라갔다…멀다…안 되겠다…닿지 않는다….

희향의 얼굴은 산근청흑(山根靑黑)하면 사십구전후(四九前後) 정다재(定多災)하고…우철의 얼굴은 정면유황광(正面有黃光)하면 무불수의(無不遂意)하고 인당다희기(印堂多喜氣)하면 모무불통(謀無不通)이라…인혜의 얼굴은 안유파문(眼有波文)하면 역주육친약빙탄(亦主六親若氷炭)하고…미옥의 얼굴은 지고광윤(地庫光潤)하면 만경유호(晩景愈好)하니 이득안한(而得安閑)이라…내 얼굴은 부위영리(部位怜悧)면 자연무화무재(自然無禍無災)라…제일 팔자가 드센 것은 우근의 얼굴이다…비약양저(鼻弱梁低)하면 비빈즉요(非貧則夭)라…아이고….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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