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서왕진/인수위 '경인운하 결정' 투명해야

  • 입력 2003년 1월 30일 17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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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운하 사업의 백지화 문제에 대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오락가락 행보가 국민을 몹시 헷갈리게 한다. 하지만 경인운하 백지화는 공정성과 투명성, 원칙과 신뢰라는 노무현 정부의 패러다임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경인운하 사업은 굴포천 유역의 홍수 예방을 위해 92년 확정된 2710억원 규모의 ‘굴포천 종합치수사업’이 3년 만에 국비 4382억원을 포함해 1조8429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토목공사로 바뀐 돌연변이다. 중동건설 경기와 수도권 신도시 붐이 사라진 90년대 중반 건교부, 수자원공사, 건설업계 등 거대 ‘토목 세력’이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창조해낸 것이다. 마치 양복단추가 하나 생겼다고 양복을 지어 입는 꼴이다.

갑작스러운 운하 건설사업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환경정의시민연대가 분석한 환경영향평가 자료에 따르면 운하 수로의 수질 오염, 인천 앞바다의 해양 생태계 파괴, 그리고 철새도래지 훼손 등 환경적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또한 건교부가 자신 있게 내놓은 경제적 타당성 수치도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용(Cost) 대비 이익(Benefit)의 비율인 B/C를 정부측은 2.2, 환경정의시민연대는 0.95라고 내놨다(B/C가 1 이상이어야 경제적 타당성 있음).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문제제기 결과 건교부와 기획예산처, 환경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시켜 사업타당성을 재검토하게 해 경인운하 사업의 진행여부를 판단키로 했다. 2002년 3월부터 8월까지 진행하기로 했던 재평가용역은 두 차례의 연기를 거쳐 10월에 마무리됐다. 8월의 중간 결론은 B/C=0.82, 10월의 최종 결론은 B/C=0.92였다. 하지만 건교부는 이 결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KDI의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무려 3개월 가까이 시간을 끌면서 다른 시나리오를 요구했다. 결국 엄연히 사업에 포함되어 있는 운하수로 건설 비용을 제외한다든지, 공사기간을 5년이나 늦추는 단계적 공사 방식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경제적 타당성을 조작해냈다.

인수위에서는 건교부, KDI, 시민단체가 모두 참여해 내용을 검증했고 이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최소한의 상식에 입각해 판단하면 백지화라는 결론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정부 신뢰성 상실’, ‘엄청난 예산 낭비’ 같은 피상적 보도를 했다. 하지만 정부의 신뢰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국책연구기관을 동원한 거짓 타당성 보고서와 환경영향평가서로 대규모 개발사업을 밀어붙이는 기존 관행과 단호하게 결별하고 국책사업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잣대를 마련하는 자세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혈세 낭비는 잘못된 계획의 철회가 아니라 엉터리 사업을 끝까지 추진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인수위는 적어도 이런 원칙에 접근하는 결정을 했다. 그러나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함으로써 스스로 신뢰성을 땅에 떨어뜨렸다. 만약 여기에 개발부서나 정당의 로비가 있었다면 이는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노무현 정부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인수위가 어줍잖게 기존 관료의 방식을 답습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신화는 없다. 원칙과 신뢰를 세우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향한 푯대를 세우는 인수위가 되기를 바란다.

서왕진 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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